어느 때부터인가 컴퓨터를 켜면 먼저 스팸메일부터 지운다. 이제는 요령까지 터득했다. 스팸메일이 훨씬 많으므로 필요한 메일을 먼저 열어본 후 보관할 것만 제외한 채 한꺼번에 지우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것마저 쉽지 않다. 스팸메일임을 금방 알수 있게 이상한 영문 조합으로 이루어졌던 발신자 표시가 사람 이름으로 된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지인들의 이름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많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전날 만난 사람이거나 오랜 만에 보는 지인 이름이면 스팸으로 처리하려 하다가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제목도 안부를 묻는 것이면 정상적인 메일로 생각하고 열어 보지만 스팸메일이어서 허탈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저 지인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 놀라울 뿐이다. 지인들과 주고받은 메일을 해킹한 것인지 의심되고, 개인정보가 노출되고 있는 것 같아 불쾌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요즘 휴대전화 음성·문자메시지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고 있는 스팸광고도 마찬가지로 교묘해지고 있다. 스팸임을 알 수 있는 ‘060’ 번호로 걸려오는 것은 이젠 별로 없다. 이동통신 서비스 회사들이 특정 번호에 대한 차단 서비스를 시작하고, 이용자들도 발신번호 표시를 본 후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휴대전화 스팸광고는 일반 전화번호나 멀티미디어 메시지를 가장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아무 의심 없이 통화 버튼을 누르면 성인 광고이거나 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연결되면서 ‘060’ 서비스 이용을 권장하는 내용이다. 일반 전화번호로 거는 부동산 광고나 문자메시지로 보내오는 자동차 대리운전 광고 등이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힌다.
지난 한 해 동안 신고된 스팸전화만도 87만여건에 달한다. 신고되지 않은 것을 포함하면 엄청나다. 휴대전화 가입자당 하루 평균 1∼2통씩 스팸전화를 받는다고 가정할 경우 3700만명의 가입자에게 무려 5000만건 이상의 전화가 매일 울려대는 것이다. 필수품이 된 휴대전화에도 스팸광고가 넘쳐나고, 컴퓨터를 켜도 스팸과 마주쳐야 하는 ‘스팸 천국’에서 사는 꼴이 됐다. 국민 대다수가 ‘스팸 노이로제’에 걸릴 만도 하다.
스팸전화의 부작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스팸메일과 달리 금전적 피해는 물론 이용자들의 생명까지 위협한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바쁘게 일하다가 못 받은 전화가 궁금해 찍힌 발신번호로 다시 걸었다가 일반전화보다 훨씬 비싼 요금을 물어야 할 때도 있다. 국제 로밍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국제전화 요금 피해까지 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물론 정보통신부가 올해 강도 높은 스팸 단속에 나선다고 한다. 이달 말부터 본인 허락 없이 무작위로 전화광고를 하는 사람에게 과태료 3000만원을 부과하고 형사 처벌까지 가능하도록 한 옵트인제 도입 등을 담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법률 개정안’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진대제 정통부 장관이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신성장동력 창출이 어느 정도 이뤄진만큼 이제는 스팸 축소 등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중책에 무게를 실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통부의 스팸 대책과 단속안은 3∼4년 전부터 해마다 한두 번씩 거르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스팸이 급증할 때마다 처벌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스팸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아 보인다. e메일 광고에 대한 규제가 진즉에 시행됐는 데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항상 제도 보완을 비웃듯 앞서나갔던 스팸의 진화가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알 수 없어 옵트인제 도입의 효용성은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