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수요처 한두 군데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조만간 회사문을 닫아야할 분위기입니다.”
중견 연성회로기판(FPC) 업체를 운영하는 K사장은 올 들어 사무실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 기술 제휴, 전시회 등 한 달에 2∼3차례씩 해외출장이 잡혀 있기 때문. 일본·중국·대만·유럽 등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해외시장을 포함한 고객 다변화가 인쇄회로기판(PCB) 업계의 최대 경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올 들어 삼성·LG 등 주요 세트업체들의 부품 단가 인하 압력이 더욱 거세진 것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 내수 및 수출 시장에서 다양한 고객을 확보하면 공급 단가 협상력이 높아지는 동시에 특정 업체와의 거래 중단에 따른 위험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PCB 업체들의 판단이다.
◇고객 다변화가 곧 경쟁력=고객 다변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심텍(대표 전세호)이다. 심텍이 생산하는 메모리모듈용 PCB는 삼성전자·하이닉스·마이크론·인피니온·난야 등 세계 ‘빅5’ 칩 메이커에 모두 공급된다. 휴대폰용 빌드업 기판도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LG전자, 모토로라코리아 등을 주요 고객사로 확보했다.
에스아이플렉스(대표 원우연)도 처음부터 일본 등 해외 업체를 집중 공략해왔다. 그 결과, 삼성SDI 등 국내 업체는 물론 FPC 생산 제품의 절반 가량을 소니·산요·마쓰시타·히타치 등 해외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올해는 일본 도쿄에 영업사무소를 개설하고 현지 고객을 다변화해 해외 매출 비중을 60%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난해 중국 TCL그룹과 PCB 합자회사를 설립한 BH플렉스 이경환 사장은 “결국 PCB업체의 성장 가능성도 국내외 시장에서 얼마나 다양한 수요처를 확보하는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선택이 아닌 필수=빌드업 PCB업체 오리엔텍(대표 이정우)은 최근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해 이탈리아 소마시스사와 기술 제휴를 추진하며 회사 이름을 아예 ‘소마시스코리아’로 바꾸기로 했다. 유럽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소마시스를 앞세워 주력 제품인 빌드업 PCB를 확대, 공급하기 위한 포석이다.
오리엔텍 한 관계자는 “소마시스사에 편입되거나 지분을 넘기는 것이 아닌데도 회사 이름을 ‘소마시스코리아’로 바꿀 정도로 유럽 시장에서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데 회사의 사활을 걸었다”고 말했다.
한국전자회로산업협회(회장 박완혁)가 이달 발표한 PCB산업현황자료에서도 국내 기판제조업체의 수출은 연평균 30%의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특히, 지난해에는 일본(78%)·중국(72%)·프랑스(48%) 지역 기판 수출 물량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상돈기자@전자신문, sd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