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벤처재도약과 실패경험 자산화](https://img.etnews.com/photonews/0508/050816060500b.jpg)
벤처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정부가 왜 벤처기업을 지원해야 합니까. 지난해 벤처재도약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기도 했었다. 벤처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추락한 상태에서 재도약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다 보니 정책결정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이 매우 컸던 것 같다.
지난 10여년간 벤처의 흥망사를 지켜보면서 벤처란 ‘똑똑한 사람들 사업하게 해서 사고 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업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신의 경력을 키워갈 수 있는 우수한 인력이 불확실하고 위험이 가득한 사업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이 벤처가 아닌가 한다.
벤처는 경제 전쟁시대의 특수전을 위한 전사를 길러내는 곳이다. 대기업과 같이 막대한 물자와 인력의 정규군을 투입하는 전쟁도 필요하지만, 소수의 인력이 속전속결로 침투하는 형태의 전투도 필요하다. 정규군이 가기를 꺼리거나 갈 수 없는 곳에 선발대로 투입되는 것이 벤처다. 실력 있는 전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사회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벤처 정책이 필요한 근거라고 본다.
벤처는 기존 시장의 파이를 나누는 것보다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는 게임이다. 요즘 유행하는 ‘블루오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벤처다. 이미 IT 분야에서 모바일·게임·인터넷·MP3 등 수많은 블루오션이 창조되었다. 그러나 내수시장이 협소하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다 보니 블루오션이 순식간에 레드오션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블루오션을 향해 나아가는 노력이 지속되도록 하는 정책적 유인이 필요하다. 벤처재도약을 위한 정책 가운데 기대를 모았던 것 중 하나가 ‘패자부활전’이다. 기업가 정신과 창의성이 시행착오의 경험을 통해 학습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다. EU는 ‘왜 유럽에서는 빌 게이츠가 나오지 않는가’라는 보고서에서 사업 실패자에 대한 관용이 부족한 사회 관행과 제도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최근 애플신화를 창조한 스티브 잡스에 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꿈을 가지고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창의적 사고가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 사회도 유럽 못지않게 사업실패에 대한 관용이 부족해서 재도전의 기회가 매우 희박하다. ‘상상력과 혁신으로 도전하라’는 말에 끌려 벤처를 창업했다가 인생의 밑바닥으로 전락한 사람도 주위에서 많이 보게 된다. 특히 이공계 선배들의 시행착오를 통해 간접경험을 한 후배들에게 벤처창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있다.
반면 안정적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다 보니 의대·약대의 인기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고시공부에 많은 대학생이 열중해 있다. 그러나 유능한 전사를 키우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지 못하는 사회는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을 기대하기 어렵다.
패자부활전 정책의 시행이 어려운 것은 실패한 기업가가 제도권에서 재기하기 어렵게 돼 있는 법률과 제도 때문이다. 자금조달과정에서 보증이나 융자를 받게 되면 기업가의 개인적 위험이 높아진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무한책임을 지도록 돼 있다.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발휘되는 사회를 만들려면 실패경험을 자산화할 수 있는 문화와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실패가 예견되는 경우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사업을 접을 수 있는 퇴출장벽의 완화가 필요하며, M&A 등을 통해 기업을 매각하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대표이사가 횡령이나 유용 등의 불법적 행동을 저지르지 않는 경우 개인입보의 책임을 완화해 주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또 글로벌 시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해외진출도 시행착오가 많이 발생하는 과정이다. 해외시장 진입의 초기 학습비용을 줄여주는 것도 벤처재도약을 성공시키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우리나라 벤처는 전반적으로 체계적인 역량구축 이전에 과감한 도전이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성향이 우리의 최대 강점이자 약점이다. 강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를 창조적 학습기회로 활용하는 전화위복의 지혜가 필요하다. 과거 벤처정책의 수행과정에 경험한 시행착오를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벤처재도약의 과제다.
◆한정화 한양대학교 교수 hanjh@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