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정보화와 역기능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 컴퓨터 격언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컴퓨터는 단순한 기계에 불과하지만 인간에 의해 좌우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컴퓨터는 악인에게도 기능한다’는 경고의 말도 나왔다.

 컴퓨터의 역사는 50여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위력은 대단하다. 산업사회를 단숨에 정보사회로 탈바꿈시켰다. 또 통신기술과 어우러지면서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바꾸었다. 이제는 인간의 욕구가 더해져 유비쿼터스 사회로까지 달려가게 하고 있다. 다양한 정보를 언제 어디서든 검색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신속 정확하게 처리해 준다. 인간의 부담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생활이 편리해진 것은 물론이다. 민원서류 하나 뗄 때마다 일일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되는 것은 분명 디지털 시대 기술발전이 가져다 준 편리함이다.

 그러나 정보사회의 편리함이 우리의 행복지수를 높여 주는 대신 반대급부적 부작용도 심각하다. 정보화를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해킹, 사생활 침해를 비롯해 각종 컴퓨터 범죄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범죄 수법과 유형도 날로 지능화·대형화·다양화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인터넷망이 활발하게 구축되면서 해외 해커들까지 무단 침투하고 있다. 국가기밀 및 산업정보의 유출과 대형 금융사고, 전산망 교란 등 심각한 사회 문제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른다. 지난해 7월에는 그렇게 철통보안을 자랑했던 10여개 국가기관이 해킹을 당했다. 어느 곳도 컴퓨터범죄에 관한 한 안전지대가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최근 국감에서 정부기관이 인터넷으로 발급하는 민원서류의 위조와 변조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터넷 민원서류의 보안 문제로 떠들썩하다. 정부가 인터넷 발급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을 정도니 심각성은 두말 할 나위 없다. 더욱이 모든 국민의 사적인 정보가 등록되어 있는 정부의 데이터베이스가 오용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서류가 부정 발급돼 사용됐는지 알 길이 없는 시민은 그저 불안할 뿐이다.

 전자정부 사업 초기부터 위변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는 데도 불구하고 보안장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정황까지 포착되면서 정부가 과연 전자정부를 제대로 관리해 나갈 수 있는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여론은 ‘구멍 뚫린 전자정부’라고 비난하고 있다. 전세계 5위라는 ‘대한민국 전자정부’가 뿌리째 흔들리는 듯하다.

 정보화와 정보 역기능이라는 동전의 양면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겉치레만 신경 쓴 인터넷 강국의 허상을 보는 듯해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번처럼 문제의 시발이 어디에 있건 사건이 나야만 그제서야 허겁지겁 일제 점검에 들어가고 정보보호에 관심을 기울이는 양 행동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또 미봉책이 되지 않을까 걱정마저 든다.

 100여편의 탐정소설을 쓴 영국의 소설가 G K 체스터턴은 “도둑들은 남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기발한 발상과 첨단장비를 동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컴퓨터 범죄도 그래서 방어시스템과 법적 대비책을 아무리 잘 세워도 속수무책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예방과 보안책이 늘 뒤질 수는 없는 것이다. 정부는 전자정부에 대한 과신을 버리고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나 국민이 정보사회에서 국가의 미래가 단순한 산업의 발전이나 정보화의 성공 못지않게 정보보호와 같은 안정화에 달려 있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