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한빛소프트 김영만 사장(2)

‘스타크래프트’ 100만장 판매로 기네스북 기록을 갈아치운 2000년도판 기네스북 표지<왼쪽>와 관련 내용 수록 부분.
‘스타크래프트’ 100만장 판매로 기네스북 기록을 갈아치운 2000년도판 기네스북 표지<왼쪽>와 관련 내용 수록 부분.

②스타크래프트 신화 탄생 

회사를 창업한 99년 1월. 함께 한빛소프트에서 일하기로 한 7명의 직원들도 창업 당시 회사에 투자를 꺼려할 정도로 게임 사업은 그 비전은 있으나 가시적인 성과를 보장하지는 못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특성 때문이었다.

 창업 후 약 3개월 동안 필자는 문화관광부와 정보통신부를 거의 매일 방문하다시피 해야 했다. 99년도 에 12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던 ‘스타크래프트’는 당시 18세 이용가여서 이용자들에게 큰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심지어 ‘스타크래프트’를 구입한 PC방 업주들은 졸지에 ‘범법자’로 몰리는 지경이었다. ‘스타크래프트’의 이용 등급 재조정을 통해 PC방 기반을 넓히는 것은 시장 확대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우선 개발사인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측에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전달하고 한국 시장을 위한 대안 모색에 들어갔다. 두 회사간의 심도 깊은 논의 후, 심의의 쟁점인 ‘피’ 색깔을 검은 색으로 바꾸기로 최종 협의를 했다. 자기 개발 게임에 대해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블리자드로서는 오로지 ‘한국’만을 위해 내리기에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심의가 까다로운 독일과 미국, 일본 등의 타국가에서의 ‘스타크래프트’ 심의 등급에 대한 근거 자료를 수집, 전체이용가 판정을 받았던 근거를 정부 부처에 제출했다. 또 공중파 방송사에 직접 출현해 심의 관련 내용을 이슈화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재심의를 받을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

 당시 정부 부처의 결단으로 ‘스타크래프트’는 단순한 자체 게임의 성공을 넘어 한국이 IT강국으로 거듭나는 촉매제가 됐다. 99년 4월 ‘스타크래프트’가 정보통신부에서 전체이용가를 받은 후, 문화관광부에서도 15세 이용가로 재조정 되면서 IT산업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빛소프트는 99년에 ‘스타크래프트’ 100만장 판매를 돌파하며 기네스북에 최다 판매 게임으로 기록되는 영예를 안았다. ‘스타크래프트’는 IMF로 힘겹던 98년 3000여개의 PC방에서 그 이듬해 1만여개의 PC방이 설립되는 기폭제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PC 및 주변기기, 하드웨어, ADSL등의 IT인프라 확대, 인테리어 산업 등 경제적 파급효과가 약 4조원에 이르며 IMF 탈출의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다.

 한빛소프트는 ‘스타크래프트’를 단순히 게임 콘텐츠가 아닌 ‘국민 게임의 대표 브랜드’로 포지셔닝 하기 위해 ‘프로게임단’을 창단하고 각종 크고 작은 ‘게임대회’를 개최하면서 e스포츠 리그를 활성화 시켜 나갔다. 현재 청소년들 사이에 각광 받고 있는 ‘프로게이머’라는 신종 직업과 ‘게임 대회’ 활성화도 이 때부터 비롯된 것이다.

 한빛소프트는 ‘스타크래프트’ 가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의 대표 브랜드로 키워 냈다면, 이어 ‘롤플레잉게임(RPG)’의 전형인 ‘디아블로2’ 의 유통으로 게임시장을 확대, 재생산해 냈다.

‘디아블로2’가 요구하는 높은 규격은 하드웨어 업체들과의 공격적인 협력마케팅으로 PC방 및 주변 산업의 특수를 지속적으로 가져왔으며 RPG라는 새로운 장르는 오늘에 이르러서도 ‘온라인 게임 강국, 코리아’를 이끄는 전신이 되기도 했다.

 ymkim@hanbitsof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