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게임의 규칙`을 지배하자](https://img.etnews.com/photonews/0606/060627110917b.jpg)
수출업계가 오는 7월 중대한 시험대에 선다. 전 세계가 주시해온 ‘전기·전자제품의 유해물질사용제한지침(RoHS)’이 마침내 실시되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내용으로 한 교토의정서 발효에 이어 전 세계 기업들이 유럽연합(EU) 시장을 무대로 자사 제품의 친환경성 여부를 검증받는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이 무역환경규제를 주목하는 것은 대응 여하에 따라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정도의 중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EU 역내 반입 전기·전자 제품에서 납·수은·카드뮴 등 6가지 유해물질이 적발될 경우 제품회수 조치, 막대한 벌금 부과 그리고 책임자 법정구속까지 가능토록 하고 있다. 해당 업체로서는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기업 이미지 타격을 고려할 때 사실상 유럽뿐 아니라 나아가 전 세계 시장에서 2류 기업으로 낙인찍히는 처벌을 받게 된다.
국내 업체들은 이 규제를 통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본격 실시도 하기 전부터 규제 대상 품목 확대가 논의되는 등 갈수록 요구조건이 강화되는 추세라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나아가 RoHS보다 더 까다로운 환경규제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제는 환경부하 감소와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외면하는 제품과 기업은 시장 퇴출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환경이슈는 기업이 적응해야 할 새로운 ‘게임의 규칙’으로 해석된다. 비싸더라도 환경 친화적인 제품을 소비하자는 이른바 ‘로하스(LOHAS) 운동’에서 보듯이 이미 소비자는 친환경 제품의 당위성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기업이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낙인찍힐 경우 참혹하게 무너지는 것을 국내외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해 왔다. 환경 영향을 중시하는 소비자의 커다란 의식 변화는 규제보다 더 무서운, 시장 자체로부터의 압박인 셈이다.
이를 간파한 세계적 기업들은 다각적인 중장기 전략을 세우고 친환경 기업으로의 체질전환에 사운을 걸고 앞다퉈 나서고 있다. 가까운 이웃인 일본 전자업계는 과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 게임기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돼 큰 타격을 입은 이래, 오히려 유럽보다 더욱 강화된 자체 환경기준을 적용하며 무장하고 있다. 일본 업계는 더 나아가 유럽연합의 환경규제를 자국에 유리하게 이끄는 합법적인 로비단체도 운영하고 있다. 더불어 중국은 내년부터 유럽연합의 RoHS를 그대로 본딴 규제를 실시할 예정이며, 미국도 캘리포니아 등 주단위로 유럽에 버금가는 규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이슈 대응에 있어서 비교적 출발이 늦은 우리 기업의 노력도 그 나름대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더불어 산업의 기초 경쟁력을 좌우하는 수많은 중소기업의 친환경 기업으로의 변신이 매우 인상적이다. 정부와 기업의 공동노력으로 주요 제조업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아 환경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 대기업의 전유물이었던 ‘환경보고서’를 발간해 해외 바이어들에게 당당히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심지어 종업원들이 기업의 미래를 밝게 보며 전직과 이직이 줄어드는 현상도 관측되고 있다고 한다.
수많은 협력업체를 거느린 전자·자동차업체의 국제경쟁력의 필수 조건은 바로 협력업체와 친환경을 위한 상생협력을 얼마나 잘 이뤄내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환율하락, 고유가 등 갈수록 험난해지는 경영환경에서 기업이 환경이슈에까지 대응하는 것은 벅찬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무역환경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고 친환경 기업으로 거듭나야만 ‘그린월드컵’으로 불리는 무역환경규제라는 게임의 규칙을 지배할 수 있다.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skchung@moci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