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성의 기술창업 Targeting] 〈401〉 [AC협회장 주간록111] 벤처투자 신뢰는 계약에서 시작된다

[전화성의 기술창업 Targeting] 〈401〉 [AC협회장 주간록111] 벤처투자 신뢰는 계약에서 시작된다

지난 6월 30일 우리나라 벤처투자 생태계에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됐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투자를 중심으로 벤처캐피탈협회,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 엔젤투자협회, 벤처기업협회 등 주요 기관이 함께한 자리에서 '벤처투자 표준계약서 및 해설서(2026년 개정판)'가 공식 선포됐다.

2018년 표준계약서가 처음 마련된 이후 무려 8년 만에 이뤄진 전면 개정이다. 그동안 벤처투자 시장은 규모와 방식 모두 크게 변화했다. 액셀러레이터가 급격히 늘었고, 팁스(TIPS)를 비롯한 민간 중심 투자도 확대됐다. 해외 투자도 증가했고, 벤처투자법 제정 등 법적 환경 역시 달라졌다. 하지만 계약서는 여전히 과거 틀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었다. 이번 개정은 단순한 문구 수정이 아니다. 투자문화 자체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SPA(투자계약서)와 SHA(주주간계약서)를 분리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투자와 이후 권리·의무가 하나의 계약서 안에 혼재돼 있었다. 이번 개정으로 신주의 발행과 인수는 SPA에서, 거래 완료 이후 주주 간 권리와 의무는 SHA에서 각각 다루도록 체계를 명확히 정리했다. 이는 미국 NVCA 표준계약서 등 글로벌 투자 관행과도 일치하는 방향이다.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계약서를 이해하기 쉬워지고, 국경을 넘는 투자에서도 활용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사전동의권 역시 큰 변화가 있었다. 기존에는 투자자 전원 동의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후속 투자나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번 개정에서는 '집합적 동의' 개념을 도입했다. 동일 라운드 투자자의 일정 비율 이상이 동의하면 전체 동의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해 실제 투자 현장에서 발생하던 비효율을 상당 부분 개선했다. 투자자 보호와 기업 경영 자율성 사이에서 더욱 현실적인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투자 방식도 현실에 맞게 정비됐다. 국내 초기 투자에서는 RCPS가 사실상 표준처럼 사용됐지만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는 CPS(전환우선주)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이번 개정 역시 CPS 사용을 권고하면서 국제적인 투자 관행과 정합성을 높였다.

리픽싱 역시 중요한 개선사항이다. 기존에는 Broad Based 방식과 Narrow Based 방식이 혼재돼 있었지만, 개정안에서는 보다 합리적인 Weighted Average 방식을 제시했다. 기업 가치 희석과 투자자 보호를 균형 있게 고려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시장 예측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창업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IPO 강제조항도 변화했다. 그동안 일부 계약에서는 사실상 상장을 강제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이번 개정에서는 이를 법적 의무가 아닌 '최선의 노력 의무' 수준으로 정리했다. 시장 상황과 기업 성장 속도를 고려한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연대책임 제한이다. 대표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이 전가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고의나 중대한 과실 등 일정한 요건이 있는 경우로 책임 범위를 제한했다. 이는 창업자의 과도한 법적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투자자 보호는 유지하려는 균형 있는 개선이라고 평가된다.

이번 개정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해설서의 대폭 강화다. 2018년 판이 단순한 계약서 제공에 가까웠다면 이번 개정판은 실무 중심의 가이드북에 가깝다. 계약조항별 중요도를 '주의·유의·점검' 3단계로 구분하고, 법적 의미와 협상 포인트, 체크리스트, 실제 분쟁 사례까지 함께 제시했다. 창업자는 어떤 조항을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고, 투자자 역시 협상 기준점을 보다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다.

벤처투자는 결국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좋은 계약은 어느 한쪽에 유리한 계약이 아니다. 투자자가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으면서도 창업자가 과도한 부담 없이 성장에 집중할 수 있는 계약이 좋은 계약이다.

그동안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계약 조항 하나를 두고 창업자와 투자자가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경험 부족으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기도 했고, 해외 투자자와 계약 체계가 달라 협상 과정이 길어지는 일도 있었다. 이번 표준계약서와 해설서는 이러한 문제를 상당 부분 줄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표준계약서는 모든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는 정답은 아니다. 기업 성장 단계와 산업 특성, 투자 규모에 따라 개별 협상은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참고할 수 있는 공통의 기준이 마련됐다는 점 자체가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제 양적 성장의 시대를 넘어 질적 성장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투자 규모를 키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공정하고 예측할 수 있는 투자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8년 만에 새롭게 탄생한 벤처투자 표준계약서와 해설서가 앞으로 창업자와 투자자가 함께 신뢰를 쌓아가는 공통의 언어가 되기를 기대한다. 건강한 계약문화가 자리 잡을 때 대한민국 벤처투자 생태계 역시 한 단계 더 성숙한 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전화성 초기투자AC협회장·씨엔티테크 대표이사 glory@cnt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