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IT코리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https://img.etnews.com/photonews/0608/060821015432b.jpg)
얼마 전 필리핀과 베트남에 다녀왔다. 막상 가보니 예상과 매우 달라 격세지감이 들 정도였다. 60년대만 해도 필리핀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잘사는 나라였다. 하지만 필리핀은 아직도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이고, 베트남도 500달러 남짓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급속한 성장을 부러워하며, 특히 IT산업과 한국의 정보기술(IT) 발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필리핀 정보통신위원장과 베트남 우정통신부 장관은 한국의 초고속인터넷 인프라와 전자정부 추진체계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며 양국 간 협력을 강력히 희망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전산원을 둘러본 콜롬비아 통신부 장관을 비롯한 27개국 337명의 외국 귀빈은 IT강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노하우와 경험을 전수받고 싶어했다.
정보통신부와 산하기관은 지난 몇 년간 후발국들에 활발한 지원을 해왔다. 정보문화진흥원은 국제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한국전산원도 IT 성장국을 대상으로 정보화 추진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 IT지원사업에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첫째, 왜 우리가 다른 나라를 도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이 부족하다. 무슨 이득이 있느냐고 따지고 어떤 성과가 났느냐고 되묻는다. 순수한 의미의 국가 간 협력사업인 IT협력센터에 ‘한국기업이 몇 곳이나 진출했느냐’며 실적을 내놓으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제 IT강국으로서 합당한 의무와 책임 그리고 나눔을 적극 실천할 때다. 우리나라가 해방 후 60년까지 미국과 유엔, 세계 각국에서 받은 국제 원조액만도 32억달러에 이른다. 받았기 때문에 되돌려준다는 의미보다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둘째, 해외지원 규모가 터무니없이 적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도 정부개발원조(ODA)가 가장 적은 나라다. 우리나라의 공적개발기금은 국민소득 대비 0.06%, 1인당 원조지출액은 8달러에 불과하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위상에 비춰볼 때 부끄러운 수준이다. 일본은 국제 원조액만 59억8000만달러로 우리나라(1억1000만달러)보다 50배나 많다. 1인당 원조액은 무려 70달러 수준이다.
셋째, 이렇게 양적으로도 부족한 상황에서 지원방식도 체계적이지 못하다. 지금부터 우리의 우수한 IT 경험과 모범사례 자료를 만들고, 경험 있는 사람을 선발해 지원단을 구성하는 등 좀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추진해야 한다. 또 세계 각국 여건을 고려한 맞춤형 IT지원 프로그램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제국 1000년을 관통한 철학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고 강조했다. 명예만큼이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세계 최고 수준의 IT를 내세우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명예에 걸맞은 의무를 다했는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개도국들은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위상에 합당한 지도적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원과 원조로써 다양한 세계 각국과 관계를 맺는 것은 IT는 물론이고 우리 경제·사회를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정부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민간기업도 진정한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하려면 이에 적극 나서야 한다. IT강국 코리아의 이미지에 알맞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때다.
◆김창곤 한국전산원장 ckkim@nc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