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삐삐의 추억, 정부와 DMB](https://img.etnews.com/photonews/0712/071218024243_1164186741_b.jpg)
삐삐(무선호출기)는 지난 90년대 최초의 개인용 휴대단말 시대를 열었다. 정점이었던 97년에는 가입자만 1500만명.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단말 제조업체 역시 돈방석에 앉았다. 하지만 몰락은 신화창조보다 더욱 빨랐다. 순식간이었다. 최정점의 순간 이동전화 경쟁체제가 구축됐다. 700만명에도 미치지 못했던 시장에 PCS가 진입했다. 삐삐 사업자는 느긋했다. 대당 1만원짜리 삐삐와 20만원에 육박하는 휴대폰 단말의 가격 저항에 기대를 걸었다. SMS라는 특화 메뉴도 여전했다. 새로운 서비스가 자리 잡으려면 최소 5년 이상이 소요된다는 통신시장의 특성도 믿었다. 오판이었다. 상대는 대한민국 최대기업군이었다. 휴대폰은 공짜로 뿌려졌다. 기능은 삐삐에 비해 월등했다. 최신 기술이었고 소비자를 흡인할 다양한 마케팅이 동원됐다. 뒤늦게 사태를 감지한 삐삐사업자들은 저항했다. 씨티폰 등 비상구를 마련했지만 허사였다.
정책 요인까지 가세했다. 이동전화를 비롯한 5대 분야의 신규 라이선스가 잇따라 허가됐다. 통신 전 부문의 경쟁체제 도입과 이에 따른 소비자 편익, 산업진흥이 목표였다. 엇비슷한 이동통신 서비스가 줄줄이 선보인 셈이다. 처음에는 역무 내 집안 싸움에서 점차 이동전화 대 삐삐처럼 진영 간 대결로 옮아갔다. 짧았지만 격렬한 전쟁이 시작됐다. 최후의 승자는 휴대폰, 이동전화였다. 어차피 사용 친화력과 범용성에서 여타 통신이 휴대폰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를 보면 삐삐의 그림자가 떠오른다. 허가 역무도 쪼갰다. 위성과 지상파로 나뉘었다. 막강한 이동전화가 도사리고 있는 판에 출발부터 심상치 않았다. 기존 휴대폰과 보완재가 아닌 대체재 성격으로 변했다. ‘손안의 TV’다 보니 시어머니가 둘이다. 정통부와 방송위다. 그럼에도 ‘세계 최초 상용화’에 가려 수익은 뒷전이었다. 유료인 티유는 콘텐츠 장벽에서 주저앉았다. 염원인 지상파 재전송은 3년여를 끌다가 얼마 전 해결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견제와 이를 ‘묵인해준(?)’ 방송위의 합작설이 나돌았다. 하지만 몸은 이미 만신창이다. 소비자에게 ‘볼 것 없는 서비스’라는 이미지가 낙인 찍힌 이후였다. 게다가 한 해 100억원 가까운 비용까지 지급한다. 티유는 2680억원 자본금을 거의 까먹은 상태다. 3700억원 투자했지만 앞날이 불투명하다. 지상파DMB 역시 그로기 상황이다. 무료니 아예 수익모델 없이 사업을 시작했다. 비즈니스인지, 공익사업인지 헷갈린다. 방송사의 공익성 논리에 밀린 탓이다. 광고로 해결하라 하지만 집토끼 놔두고 산토끼 잡으라는 것이다. 연말 가면 사업 접어야 할 수준이다.
삐삐는 원없이 사업은 해봤다. DMB는 2005년 5월부터 지금껏 규제 탈피에 경영역량을 총동원해야 했다. 뭐 하나 해볼라 치면 곧바로 규제와 비판이 가로막는다. 지상파 재전송이 그렇고 성인 및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하나 제대로 다뤄보지 못했다. 시장에서의 승부는 진입 타이밍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밥그릇과 관련되면 움추러들었다. 방송위는 유독 엄격한 잣대로 규제기관 노릇 톡톡히 한다. 방송사 중간광고 허용은 그리 쉬운데 킬러앱 하나 없는 DMB업계엔 요구사항도 많다.
기업은 경영적 판단에 오류가 생기면 망한다. 고객에 가치를 제공하지 못해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시장원리다. DMB에도 시장 원리 적용해 주자. 경영진이 규제당국과의 씨름에 날을 보내는 판에 서비스와 가치 창출은 언감생심이다. 마침 IPTV에 와이브로까지 컨버전스 서비스가 잇따라 론칭되고 있다. 10여년 만에 뉴미디어 큰 장이 선다. 정부는 이들이 후회 없이 싸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면 된다. DMB가 삐삐가 될지 와이브로가 그 전철을 밟을지 선택은 소비자 몫이다. 그래야 뒷말이 없다.
이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