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32>
체신공사 백지화
1996년 1월 8일.
정보통신부는 새해 주요 업무계획에서 체신공사 설립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체신공사 설립은 정부가 개혁 차원에서 3년여간 준비해온 대통령 공약사항이었다. 지난 1995년 체신공사설립법(안)을 마련, 입법예고까지 했다. 이런 정책을 공사(公社)형 또는 기업관청형으로 재검토하겠다는 것이었다. 체신공사 설립 백지화를 의미했다.
이틀 후인 1월 10일.
정통부는 이런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석채 장관의 재검토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이 장관의 체신공사 설립에 관한 입장은 무엇이었을까. 정통부 고위관계자 A씨의 전언.
“이 장관은 현행 공기업 규제제도 아래서는 공사화를 해도 경영지도와 임금 가이드라인 등 각종 규제에다 인센티브 부여가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노조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해 반대 입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체신공사 설립은 김영삼 대통령이 민자당 후보시절 발표한 정보통신 분야 6대 공약사항 중 하나였다. 대선후보 시절 김 대통령은 전국 우체국을 전산화해 지역 정보화를 촉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세부 항목에 우정공사화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인가. 김 대통령은 1993년과 1994년 체신부의 새해 업무보고 시 우정사업에 관한 지시를 빠뜨리지 않았다.
“우정사업의 서비스 질도 높이고 경영을 합리화하는 방안을 마련해 주기 바람.”(1993년 3월 31일 대통령 지시사항)
“우정공사설립을 계기로 110년의 역사를 지닌 체신부의 기능과 역할도 이제는 재검토해야 함.”(1994년 1월 13일 대통령 지시사항)
1994년 1월 13일. 윤동윤 체신부 장관(현 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은 이날 청와대에서 체신부의 새해 주요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윤 장관은 “우정사업의 경영쇄신 및 자립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1997년에 우정공사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그해 2월 5일.
체신부는 우정업무와 체신금융업무를 분리 전담할 우정공사 설립을 위한 구체안을 발표했다. 이 안에 따르면 1997년 1월 우정공사를 설립한다는 목표 아래 설립추진단을 2월 발족하기로 했다. 추진단은 단장을 비롯해 15명으로 구성해 공사법인 및 우편관련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회계관계 기초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체신부는 1994년 말까지 공사업 기본법 및 사업법의 정부안을 확정짓고 1995년에 공사화 관련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어 하위 법령정비작업을 추진한 다음 1996년에 공사조직 회계 분리 및 각종 사규 약관 개정 등을 추가로 마련하기로 했다.
총무처와 인사협의가 지연되는 바람에 체신부는 1994년 4월 7일 우정공사설립추진반장을 구성했다. 반장에 박병호 서기관(서울 중앙우체국장 역임)을 임명했다. 사무관 2명과 일반직원 등으로 추진반을 구성해 서울광화문 우체국 5층에서 곧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장복수 사무관(서울중앙우체국장 역임)의 기억.
“반장을 포함해 전체 인력이 10명 이내였습니다. 파견근무 형태였어요. 공사설립추진위원회 사무국설치를 위한 준비작업을 했습니다.”
1994년 8월 22일 오전 10시 반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만국우편연합(UPU) 제21차 총회가 열렸다. 이날 UPU총회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윤동윤 체신부 장관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와 각국 대표단, UPU국제기구 대표단 등 모두 13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총회는 10개국어로 동시 통역해 국내에서 열린 회의사상 전례 없는 기록을 남겼다.
김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정부는 우정(郵政)사업의 질적 도약을 위해 1997년부터 우정기구를 공사화할 계획”이라며 “이번 서울총회가 남북 간에 우편과 통신의 교류를 촉진시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UPU총회에 참석한 뒤 종합전시장 1층 태평양관에서 열리고 있는 ‘필라코리아 94 세계우편전시회’를 관람하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체신부는 김 대통령의 연이은 우정공사설립 발언에 공사화를 서둘렀다.
정부는 1994년 12월 조직개편을 단행,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개편했다. 정부는 조직개편 시 우정사업의 공사화를 공개발표했다.
정통부는 12월 30일 이재영 강원체신청장을 체신공사설립추진위 사무국장으로 발령냈다.
그리고 1995년 1월 27일 오전 서울광화문 우체국 4층에서 체신공사설립추진위원회 현판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경상현 장관(현 KAIST 겸직교수)과 박성득 기획관리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 그리고 관련 단체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정통부 기획관리실장의 지휘를 받는 추진위사무국은 이 국장 아래 총무반(박병호)과 우정반(조병하), 금융반(곽태근) 등 3개 반을 두고 인력은 38명이었다. 총무반은 기본계획수립과 법제정, 인사, 회계 제도 등을 마련했다. 우편반은 우편사업제도와 약관 등을 제정했다. 금융반은 금융관련 사규와 약관 제정 등을 만들었다.
이 국장 등은 뉴질랜드와 호주 등에 나가 외국의 사례를 둘러보고 이들 나라의 상품판매와 시설구조를 당시 공사 법안에 반영시켰다.
정통부는 1995년 5월 11일 사무국이 마련한 ‘한국체신공사’를 설립하는 내용의 한국체신공사법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국장의 회고.
“그 당시 공사설립은 진행속도가 빨랐습니다. 체신공사 부지까지 확보했습니다. 서울 강남 학여울 인근에 3만㎡(9000평)규모의 부지를 서울시와 협의해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관련부처와 협의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재정경제원과 협의가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재경원 차관이 이석채 장관이었습니다. 좀처럼 진전이 없자 그 무렵 윤영대 재경원 예산총괄심의관(통계청장 역임)이 ‘공사설립은 안 될 것’이라고 저한테 귀띔했습니다. 대통령의 공약사항인데 설마했지요. 그게 이 장관이 오면서 현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당시 정통부가 마련한 법안에 따르면 체신공사는 자본금 7조원으로 정부가 전액 출자(부동산등 현물 포함)하고 △우편 및 체신금융사업과 부대업무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단체로부터 위탁받은 업무 등을 담당하기로 했다. 또 전국 우체국에서 전산망을 이용한 정보통신사업과 택배(宅配)서비스 등 각종 수익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부대사업으로는 전국 우체국 전산망을 이용한 시장조사 등 부가통신(VAN)사업, 현행 소포(6㎏까지 제한) 이상의 택배서비스를 비롯해 유휴시설을 이용한 임대사업 등 다양한 수익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위탁사업으로는 이미 실시중인 민원서류발급대행업무나 각종 티켓예매 등의 업무를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정통부는 이 법안을 그해 7월 임시국회에 제출해 통과되는 대로 관계 부처 공무원 등으로 공사설립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착착 진행되는 법은 아니었다. 정통부의 구상은 그해 9월 4일 오후 열린 당정협의에서 브레이크가 걸리고 말았다. 부처 간 이견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게 공사화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민자당은 이날 정보통신부 업무 중 우편-체신금융 분야를 분리해 체신공사를 설립, 전담토록 하는 한국체신공사법 제정안에 대한 보고를 받고 ‘문제가 있다’며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처리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민자당은 체신공사 설립이 철도청 공사화처럼 부채문제 등이 장애가 되지는 않지만, 공사화에 따른 경영효율성 제고와 공무원들의 신분변동으로 인한 불안 해소 등에 관해 좀 더 치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정협의에는 김종호 민자당 정책위의장(내무부 장관 역임)과 홍재형 부총리 겸 재경원 장관(현 국회부의장), 경상현 장관 대신 이계철 정통부 차관(한국통신 사장 역임) 등이 참석했다. 재경원은 정통부의 공사설립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경상현 장관의 기억.
“당정 회의에 제가 참석하지 못하고 이 차관이 대신 나갔습니다. 당정 협의과정에서 공사설립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많아 국회통과를 보류하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 국장의 설명.
“재경원이 체신공사 설립에 재검토 의견을 냈습니다. 이는 사실상 반대입장이었습니다. 체신공사의 금융사업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별정우체국도 쟁점이 됐습니다. 물론 한국통신 노사 파업사태 이후 노사문제도 고려사항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총무처나 통상산업부, 법무부 등은 별다른 이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통부는 공사화설립이 보류되자 세 가지 대안을 검토했다.
특례법을 제정해 기능이 보강된 중앙부처 형태의 조직을 만드는 방안과 특례법 제정으로 자율성이 부여된 외청(外廳)을 신설하는 방안, 그리고 체신공사를 계속 추진하는 방안 등이었다. 체신공사 추진의 경우 설립법 제정이 늦어져 1998년이나 돼야 체신공사화는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정통부는 체신공사화 백지화 방침에 따라 사무국 조직을 축소했다. 기존 3개 반을 제도개선반과 품질개선반의 2개 반으로 줄였다. 실무책임자인 이 국장도 1996년 8월 20일 경북체신청장으로 발령이 났다. 그는 현재 체공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후 정통부는 우정사업본부특례법을 제정해 2000년 7월 1일 우정사업본부를 발족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통부를 폐지하자 우정사업본부는 지식경제부 산하로 이관됐다. 우정사업본부(본부장 남궁민)는 우편업무 외에 금융기관으로서 서민의 안전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가다. 자금운용규모는 약 80조원이다.
그러나 우정사업공사화는 정치지형(地形)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재등장할 수 있는 휴화산(休火山)과 같은 사안이다. 체신노조 측의 거센 반발로 번번이 무산되긴 했으나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우정사업본부를 공사화 형태로 변경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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