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미디어 효과 이론 가운데 ‘침묵의 나선형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여론형성의 사회심리학적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의 여성커뮤니케이션 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이 제시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미디어의 막강한 영향력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다수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신의 의견이 우세한 여론에 속하면 더 크게 주장하지만, 열세에 속하면 침묵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미디어의 의견이 설사 소수 의견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다수 의견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견과 다를 때 더욱 침묵한다. 작은 침묵이 나사의 소용돌이 궤적처럼 점점 커진다. 결국 소수의 의견이라도 미디어를 지배한 세력이 여론을 좌지우지한다.
하지만 ‘나선형 침묵’은 마치 풍선과도 같다. 침묵의 궤적이 임계점에 달하면 폭발하고 만다. 최근 민주화 바람이 한창인 중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독재정권이 무너질 때 미디어의 강력한 통제도 한낱 모래성에 불과하다.
전자신문이 최근 ‘SW 분리발주 국토부 역주행’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국가공간정보통합체계 구축 사업이 대기업에 유리하게 재편되고 있다고 지적하자 ‘긴 침묵’이 깨졌다.
기사가 나가자 이 사업에 참여해오던 중소업체 사장들이 일제히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대부분의 사장들은 “모처럼 속이 시원하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이 사업에 대한 언론의 평가가 호의적이었기에 불이익을 당하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사업은 첫 시범 사업에서 대기업 3사가 연합한 뒤 수주해 논란이 됐다. 그 이후 국토부가 다양한 중소기업 상생 정책을 발표해 마치 중소기업에 유리한 사업처럼 포장됐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이번 보도 이후 다른 분야 대표들도 그동안 사업을 진행하면서 받은 설움과 울분을 토해냈다. 유지보수 사업을 하면서 대기업으로부터 한 달에 고작 수십만원의 대가를 받은 속사정까지 털어놓았다. 그간 침묵해온 산업계 밑바닥 민심은 쏟아지는 햇살과 같았다. 손바닥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하늘을 모두 가릴 수는 없다. 국토부는 더 늦기 전에 사업 전반을 되돌아봐야할 시점이다.
장지영 정보통신담당 차장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