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다. 어느 50대 한 자영업자의 고백이다. 은퇴하고 뭔가를 해보겠다고 음식점을 열었지만 매달 말이면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에 빠지곤 한다.
인건비, 임대료, 식자재비, 세금 등을 감안하면 항상 마이너스를 고민해야 한다. 자신의 인건비는 감히 생각지도 못한다. 그렇게 버텨온 것이 벌써 여러 달이다.
이 같은 고민에 가을밤을 지새는 가장이 점점 늘고 있다. 50대 이상의 자영업자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 1991년 189만명이었던 50대 자영업자 수는 2001년 241만명, 올해에는 벌써 310만명에 이르렀다.
정년이 한꺼번에 도래한 탓이다. 1955년~1963년 사이 태어난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는 10년 전 IMF 시기에 구조조정으로 한파를 겪다가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운명에 직면했다.
소자본 창업이 러시다. 음식점, 운수업, 도소매업이 주류다.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과 창업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곳곳에서 정글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영업자는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곳이 70% 이상이다. 창업 1년만에 30%가, 창업 3년만에 절반 정도가 폐업한다. 통계상으로 그렇다.
개인으로 보면 난세일 수밖에 없다. 생계형 난세에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다. 새로운 희망을 갈구하다가도 현실의 벽 앞에 서면 절망으로 빠져들고 절망의 순간에 또 다른 희망을 추구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라면 어땠을까. 그의 ‘Stay hungry, stay foolish.’는 그런 점에서 다시 한 번 음미해볼 만하다.
희망을 갈구하는 동양적인 의미에서 보면 와신상담(臥薪嘗膽)과 일맥상통한다. 항상 희망을 갈구하라는 ‘Stay hungry’는 말 그대로 어려움 속에서도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전진하라는 의미다.
오왕 부차는 가시 많은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자면서(臥薪) 아버지 원수를 갚겠다고 다짐한다. 월왕 구천도 쓸개를 핥으며(嘗膽) 패전 굴욕을 되씹는다. 복수가 희망인 셈이다. 잡스는 애플을 창업한 후 회사에서 쫓겨나 절치부심한다. 성공만이 유일한 복수인 셈이다.
하지만 희망을 위해서는 치밀하게 준비하되 우직하게 나아가야 한다. ‘Stay foolish’의 의미다. 다름 아닌 바보스러울 정도로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라는 것이다.
부차는 은밀히 군사훈련을 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구천은 부차의 포로가 된 이후 3년 동안 부차의 노복으로 일하는 등 갖은 고역과 모욕을 겪었다. 월은 영원히 오의 속국이 될 것을 맹세했고 아내는 부차의 첩이 됐다.
잡스 역시 회사에서 쫓겨나 절치부심한다. 넥스트(NeXT)사와 픽사(Pixar)라는 회사를 설립, 기회를 엿보게 된다. 구천이 은밀히 군사훈련을 하면서 때를 기다린 것과 비슷하다.
우여곡절 끝에 넥스트사·픽사가 성공 궤도에 이르고, 이를 높이 산 애플 이사회가 마침내 잡스를 부르게 된다. 11년 4개월 만에 이뤄진 ‘왕의 귀환’인 셈이다.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연이은 성공의 발판이 됐다.
우리는 어떤가. 치열하게 어려운 강을 건너온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는 끝이 아니다. 물리적인 나이로 재단하는 은퇴는 다시 시작하는 의미일 뿐이다. 인생 2모작을 준비하는 새로운 출발선이다. 도광양회를 넘어 와신상담의 자세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낮은 자세로 한 번 더 자신을 뒤돌아보고 희망을 재설계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현대적 의미의 와신상담이다.
박승정 통신방송산업부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