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홍진기의 TV3.0`을 새로 연재합니다. 새로운 코너에서는 국내 콘텐츠 산업 전망과 발전 방안, 글로벌 미디어 콘텐츠 동향과 분석 등을 주로 다룰 예정입니다. 필자인 홍진기 씨는 MBC·CBS·제일기획 Q채널·EBS 등에서 방송과 콘텐츠 관련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콘텐츠진흥원·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 콘텐츠 관련한 정책 조언을 아끼지 않은 콘텐츠 전문가입니다. 2009년에 콘텐츠랩을 설립해 현재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 격주로 연재하는 TV3.0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왕후의 밥상과 걸인의 찬](https://img.etnews.com/photonews/1202/235706_20120201160839_961_0001.jpg)
쌀이 없어 아침을 굶고 출근한 아내를 위해 실직한 남편은 어렵게 쌀을 구해 점심상을 준비한다. 따뜻한 밥 한 그릇에 찬으로 간장 한 종지를 마련한 남편은 초라한 밥상을 대할 아내를 생각하며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는 쪽지를 남긴다. 남편의 마음이 담긴 쪽지를 보고 아내는 왕후가 된 것보다 더 가슴 뿌듯한 행복감에 눈물이 핑 돈다.
삶의 소중한 진실을 감동스럽게 전해주는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 나오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국내 미디어 산업에서 왕후의 밥상을 플랫폼 사업자에, 걸인의 찬을 콘텐츠에 비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국내 미디어 산업 재편이 본격화되고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떠올린 것은 그동안 밥상을 가지고 있는 왕후들은 많아졌지만 맛깔스럽고 인기 있는 반찬은 여전히 걸인의 형편임을 역설적으로 말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현재 벌어지는 첨예한 문제가 밥상과 반찬으로 야기된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밥상과 반찬이 제대로 갖춰진 지상파 업계와 반찬이 부족한 케이블 업계의 충돌은 그동안 잠복된 문제가 터진 것이지만 앞으로 위성이나 IPTV업계에도 불똥이 튈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새로운 밥상이 등장할 때마다 밥상을 채울 반찬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나왔지만 그 밥상에 맞는 제대로 된 반찬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업계에서는 시간도 돈도 많이 드는 반찬 만드는 일보다는 남의 밥상의 반찬이나 다른 나라 반찬을 싸게 사다가 밥상을 채우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었다.
초기부터 제대로 된 반찬을 만들기 위해 영양가 있는 식재료를 연구하고 새로운 레시피를 창안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후발 사업자 입장에서 콘텐츠는 초기 비용과 장기적인 성과 부담이 있고 성공 가능성도 높지 않기 때문에 위험 부담을 분산 시킬 수 있는 상호보완적인 시장 지원이 우선 되어야 한다. 각각의 플랫폼에 맞는 콘텐츠를 교차적으로 제작 유통되는 상황이 그것이다.
현재 국내 미디어 산업의 콘텐츠 제작과 유통은 아직까지도 지상파에 편중되고 많은 플랫폼 사업자는 외부 변수에 의존해 콘텐츠를 수급하는 상황에서 지상파 판권과 수입 콘텐츠 가격 상승은 큰 압박요인이다. 뒤늦게나마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콘텐츠 자생력을 갖추려는 업체들이 등장하고 일정 부분의 성과를 얻으면서 변화가 시작 되었지만 다양한 콘텐츠 제작과 유통이 시장 구조를 바꾸기에는 아직도 부족하다.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 나선 업체는 자체적인 콘텐츠 생산력이 플랫폼의 효용성을 높이고 성공한 콘텐츠가 수익성과 홍보 면에서 큰 효과를 보이면서 콘텐츠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고 활용할 수 있는 권리 확보에 나서고 있다.
국내 미디어 산업에서 콘텐츠가 걸인의 찬으로 비유되는 또 다른 이유는 밥상을 채우는 수많은 반찬이 모두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콘텐츠 제작과 유통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가치가 제대로 산정되고 활용도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콘텐츠는 걸인의 찬이 아닌 왕후의 찬으로 변해갈 것이며 정부가 굳이 나서서 반찬 만드는 비용을 지원하고 반찬가게를 만들어 직원을 고용하라고 독려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것이다.
반찬이 없어 초라한 밥상을 왕후의 밥상으로 만드는 것은 제대로 만든 반찬의 값어치를 인정해 주는 데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자율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오랜 기간 공고하게 유지된 시스템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이해 관계를 조율하기도 쉽지 않다. 모든 사업자를 한 마음으로 묶는 것은 어렵겠지만 당장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사업자에게 단기적인 처방보다는 합리적인 선택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힘도 들고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자신들만의 콘텐츠를 만들게 하고 유통시켜 콘텐츠 값어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홍진기 콘텐츠랩 대표 jinkihong@contentlab.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