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 불법 콘텐츠 유통 `토렌트` 심의조차 안했다

드라마·영화 등의 불법유통 창구로 토렌트가 악명을 떨치고 있지만 정부가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해 피해를 키우고 있다. 사이트 차단이나 이용금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선 이 사안에 대해 심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7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토렌트가 저작 콘텐츠의 불법유통 창구 역할을 하면서 관련 저작권 피해 규모만 최소 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이용자들이 불법으로 저작물을 공유하면서 저작권자의 복제권을 침해한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가 9개 토렌트를 6주간 조사한 결과, 이들 사이트에 올린 불법 콘텐츠는 100만개에 달했고 사이트 이용자들은 280만건을 내려받거나 재전송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작권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곳은 방송사다. 불법 유통 콘텐츠 60%가량이 드라마인 데다 대부분 방영 후 2~3시간 내에 사이트에 올라오면서 합법 유료 이용자보다 앞서 시청하는 상황이다.

한 방송사 저작권대응팀 관계자는 “웹하드 등록제가 시행된 후 불법유통이 어려워지자 토렌트로 사용처를 옮기면서 드라마 등을 불법 이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방송사, 영화사 등은 토렌트 사이트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지만 처벌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별다른 회원가입 절차 없이 별도 프로그램 실행만으로 운영되는 토렌트 특성상 개인을 식별하기 어렵고 저작물의 일부를 올리는 방식으로 유통되고 있어 적발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방송사와 저작권위원회는 IP차단이나 사이트 폐쇄 조치를 수차례 시도했지만 관련 조건이 까다롭고 시일이 오래 걸려 실효성이 낮다고 주장했다.

방송사 관계자는 “지난해 5월부터 불법유통 비중이 높은 사이트에 대한 IP차단 등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요청했지만 단 1건의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또 다른 사유재산 침해에 해당될 수 있어 섣불리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권리자 단체와 저작권위원회는 법 규정의 발달이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고려하면 인터넷 분야 저작권 침해에 대한 심의·의결 기능을 민간위원회 조직이 아닌 행정부와 저작권위원회로 일원화해야한다는 의견을 냈다.

한 디지털저작권 전문가는 “토렌트 사이트에 저작권 침해에 따른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공문을 보내자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이용자들이 해외 사이트로 옮겼다”며 “적절한 대응을 위해선 심의 기능이 보다 간소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