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종에서 대기업과 중소 협력사들이 한 차원 높은 동반 성장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판가 후려치기 등 기본적인 공정거래 차원을 넘어 기술·자금·정보제공 등에 이르기까지 협력의 지평을 넓히겠다는 취지다.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윤상직)는 4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 협력 생태계 협약식`을 열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동부하이텍과 주성엔지니어링 등 협력업체 20개 대표가 참석했다.
이번 협약은 글로벌 소재·장비 업체를 육성하기 위해 지속적인 평가 시스템을 도입해 실행력을 키우는 데 방점을 뒀다. 민관 합동 위원회를 구성해 △공동 연구개발 △공정거래 △구매·해외 진출 △경영 지원 △인력 지원 △협력성과 공유 6대 분야의 동반성장 실적과 성과를 점검하고 우수 사례를 발표하기로 했다.
기존 정부의 동반성장 대책이 후속조치가 미흡하고 실적점검 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중소 협력업체들이 체감하기 힘들었다면, 이번에는 구체적인 평가 방법을 마련해 현실 가능성을 높였다는 의미가 있다.
납품가 후려치기,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 행위 제재 조치와 병행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가 기술 로드맵을 공개하고 유휴 특허를 공유하는 등 협력 업체에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산업부와 업계는 올가을 반도체·디스플레이 각 분야에서 `민관 합동 동반성장 실적점검 회의`도 개최하기로 했다.
◇뉴스의 눈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특허 크로스라이선스를 하면 폐쇄적인 협력 업체 거래 관행도 개선될 수 있습니까?”(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SK하이닉스와는) 기술 차이도 있고 해서 시간을 두고 고민해볼 문제”(우남성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장)
“ASML 같은 회사를 육성하는 것과 교차 구매는 다른 이야기인 것 같다”(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윤 장관은 협약식에서 네덜란드 ASML 같은 세계 굴지의 장비업체가 나오기 위해서는 전속 거래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윤 장관은 “ASML이 공급하는 노광 장비는 핵심 설비인데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다 구매하고 있지만 한국 협력업체들은 각 기업에 전속돼 있다”고 말했다. 두 회사가 특허 크로스 라이선스로 기술을 공유한 것처럼 소재·장비·부품도 교차 구매를 해달라는 주문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는 첨단 기술이 경쟁력의 핵심이라 대기업과 협력사 간 기술 결합도가 높다. 대기업들이 장비 기업에 잇따라 투자를 하면서 수직계열화를 해 왔던 것도 핵심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0년 글로벌 장비업체 A사가 경쟁사에 기술을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지난해에는 중국 업체 장비 발주에 입찰했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업체가 기술 유출로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삼성·LG·SK 등 대기업의 적극적인 실천 의지 없이는 글로벌 장비 기업 육성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교차구매를 강요하기보다는 현실성 있는 대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제품 품질·기능 기준(규격)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부품 등 원가 산정에서 일방통행식 체제를 바꾸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신두 서울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는 “외국계 장비를 다수 사용하면서 면피용으로 저렴한 장비 등을 국산으로 써왔던 게 사실”이라며 “국산화율이 아니라 국산 제품 투자금액으로 평가 기준을 바꾸고 실제로 장비 업체들이 매출·수익을 내게 해주면 기술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