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공급 과잉시대에 살아남는 법](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3/11/19/sdaaia-as3.jpg)
물건이 넘쳐 난다. 전자제품, 자동차, 선박 등 완제품부터 철강 등 원부자재, 심지어 부동산과 식품까지 공급이 수요를 웃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공급 과잉 시대다.
불행하게도 전자제품이 맨 먼저였다. 집 안만 둘러봐도 안다. PC, 노트북, TV, 디지털카메라 등 두세 대씩 있는 집이 많다. 더욱이 이젠 스마트폰이 다른 전자제품 대체 수요까지 집어삼킨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과 TV를 보며, 사진을 찍는다. 이러니 컴퓨터와 TV, 카메라 업체들만 죽을 맛이다. 잘 팔리지 않는데 가격 경쟁은 더 심해진다.
공급 과잉은 업계 구조조정을 부른다. 상위 몇 개를 뺀 나머지는 군소업체로 전락하거나 아예 퇴출된다. 완제품뿐만 아니다. 후방산업까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PC 불황이 반도체 치킨게임을 야기했고, 지금 반도체장비 업체까지 갔다.
그나마 수요가 활발한 스마트폰도 사실상 공급 과잉이다. 아직 수요가 공급을 웃돌지만 삼성전자와 애플에 쏠리니 나머지 업체엔 공급 과잉보다 더 심각하다. 모토로라, 노키아, 블랙베리가 줄줄이 매각됐다. 지난주엔 레노버의 블랙베리 인수설도 나왔다. 구조조정도 영역 파괴다.
하루빨리 수요가 살아나야 하건만 당분간 기대난망이다. 미국이 가까스로 부도 위기를 넘겼다고 하나 글로벌 경제 위기가 `자본주의 심장부`까지 번진 것 자체가 충격이다. 1930년대와 같은 세계 대공황 우려도 나온다. 그때보다 세계는 훨씬 긴밀하게 연결됐다. 파괴력은 더 엄청날 것이다. 그렇다고 대공황을 끝낸 세계 전쟁이나, 반도체 업계 위기 때마다 나온 일본과 대만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를 바랄 수 없지 않은가. 정부든 기업이든 닥쳐온 위기를 벗 삼아 생존 방책을 짜는 데 열중할 수밖에 없다.
중국과 동남아 국가 등 세계 생산기지가 공급 과잉을 부추긴다. 우리나라가 가격 비교 우위가 높은 곳과 똑같이 경쟁해 이길 수 없다. 부가가치 낮은 제품은 국내외 아웃소싱으로 돌리되 부가가치 높은 독점 기술과 생산 기술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규모도, 기술개발력도 달리는 중소기업은 공동 판매와 생산 인프라 공유, 나아가 통폐합까지 모색해야 한다.
고객 관리도 중요하다. `공급과잉 시대엔 신규 고객보다 눈앞의 고객을 더 소중히 여기라` 사이토 히토리 일본 긴자마루칸 회장의 경구는 기업 규모, 업종 불문하고 귀담아 들을 말이다.
새 수요 창출이 절실하다. 정책 영역이다. 그런데 정부가 제 노릇을 하지 못한다. 온갖 경기 활성화, 일자리 창출 정책을 쏟아내지만 정작 신규 시장 창출 정책이 없다. 산업부터 사회복지까지 정책마저 공급 과잉이다. 정치 쟁점인 노인연금만 해도 그렇다. 적든 많든 노인연금이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데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조차 없다.
기업이 절실히 원하는 것은 정부 지원금이 아니라 시장이다. 우리나라는 앞선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를 활용해 스마트카와 전기차, 헬스케어, 스마트 금융·교육·국방, 융합 콘텐츠, 공유경제 등 다른 나라보다 먼저 만들 시장이 많다. 정부는 뿌리 깊은 기득권 세력과 규제권력에 사로잡혀 획기적인 시장 창출 정책을 내놓지 못한다. 창조경제 정책마저 수요 창출보다 기술 개발과 공급 확대만 초점을 맞췄다. 시장만 열리면 기업이 알아서 할 영역에 정책과 예산을 집중하면서 늘 세수 부족 타령이다.
물론 수요라는 게 정부 뜻대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행착오도 분명 나온다. 그럴지라도 마냥 넋 놓고 세계 경기 회복만 기다리는 것보다 낫다. 정부가 수요 창출에 더 과감해져야 한다. 규제 완화 명분도 있다. 무엇보다 기업이 따라 움직인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