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정부 원천기술 사업 조급함 버리자](https://img.etnews.com/photonews/1312/514442_20131225140104_446_0001.jpg)
3D V낸드플래시메모리가 있다. 3차원 수직구조 낸드플래시메모리로 미세공정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했다. 기존 낸드플래시보다 속도는 갑절, 셀 수명은 10배가량 개선돼 차세대 낸드플래시 시장을 이끌어갈 대세로 떠올랐다.
빅데이터 시대 개막에 따른 서버 및 데이터저장장치 수요가 늘어나는 데다 최근 컴퓨터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를 구성하는 핵심 부품이 낸드플래시이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서 더 큰 용량과 더 빠른 데이터처리 속도를 구현하는 V낸드의 쓰임새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올해 240억달러로 추정되는 낸드플래시 시장은 새해 260억달러 규모에 이르는 등 연간 8~9%의 꾸준한 성장이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지난 8월 세계 최초로 양산 체제를 구축했고 SK하이닉스 등도 양산 준비에 한창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신기원을 연 V낸드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포기하지 않은 집념과 참을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V낸드 개발 역사는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종합기술원이 처음 개발에 착수해 2000년부터 10년간 정부의 21세기 프론티어사업 지원을 받았다. 2004년 삼성전자가 개발을 이어받았고 2006년 황창규 당시 삼성전자 사장(KT 회장 내정)이 CTF(Charge Trap Flash) 기술로 발표해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0년 프론티어사업이 끝났지만 삼성전자는 기존 평면구조로는 미세공정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수직구조를 적용, 양산에 성공했다. 1996년 개발을 시작해 2013년 양산까지 17년이 걸린 셈이다.
V낸드 개발 사업은 민간기업과 정부가 추진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대표적 성공사례가 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주도 원천기술 연구개발 사업이 상용화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장되는 게 현실이다. 정부 원천기술 연구개발 사업은 5~6년 단위로 추진된다. 하지만 5~6년 만에 원천기술을 개발해 상용화 단계로 끌어올리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국정감사 등에서는 연구개발 기간 안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질타하는 실정이다. 대학이나 연구소도 과제기간 종료와 동시에 연구를 중단하다 보니 투입한 예산과 연구 결과물이 그대로 묻히곤 한다.
정부도 하나의 기술개발에 조급해 할 게 아니라 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 미래를 이끌어 갈 원천기술 개발 사업 분야에서는 민간 기업에 앞서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하는 마중물을 제공해야 한다. 연구과제 기간이 끝나더라도 상용화에 접근한 기술을 골라 완성도를 높이는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대통령 임기 안에 새로 투자해서 과실까지 수확하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미국 링컨 대통령은 철도와 농업 발전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으로 유명하다. 케네디 대통령은 반도체, 닉슨 대통령은 바이오, 클린턴 대통령은 나노산업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 대통령 모두 당대에 과실을 수확하지 못했지만 적게는 10~20년, 많게는 30년 이상 지난 후에 산업이 꽃을 피웠다. 그럼에도 공은 처음 정책을 입안하고 전개한 대통령 몫이 됐고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우리도 지난 정부에서 넘어 온 과제는 무조건 버릴 게 아니라 중요 원천기술 연구과제는 계승 유지 발전시켜야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