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동의 사이버세상]<23>디지털 권력(digital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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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동의 사이버세상]<23>디지털 권력(digital power)

디지털 사회 핵심은 네트워크를 활용한 사람과 연결, 즉 ‘관계’에 있다. 사람이 모이는 자체가 미디어가 되고 나아가 네트워크 권력이 된다.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사용자가 많을수록 영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과거 정보독점으로 다른 사람이나 집단 형태를 좌우했던 힘이 분산되면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다.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파놉티콘(panopticon)’에서 찾아볼 수 있다. 1791년 영국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모델로 제시한 것이 파놉티콘이다. 파놉티콘은 ‘모든 것을 한눈에 파악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소수 교도관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죄수를 감시하는 원형감옥을 설계하면서 이 말을 창안했다.

원형감옥 설계 핵심은 ‘시선의 불평등 교환’에 있다. 그의 설계도를 보면 바깥쪽 원주를 따라 죄수 방이 늘어서고 중앙 원형 공간에 감시탑이 높게 들어서 있다. 중앙 감시탑에서는 교도소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밖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다. 교도관은 죄수 움직임을 볼 수 있지만 죄수는 교도관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고 교도관이 자신을 감시하는지 알 길이 없다. 교도관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죄수에게 감시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결국 죄수는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해서 스스로를 감시하고 그 감시에 복종하게 된다. 최소한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누리는 완벽한 통제장치인 셈이다.

근대적 감옥의 이상적 모델로 제시된 파놉티콘은 그 구상이 태어난 지 거의 200년 만에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에 의해 재탄생한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파놉티콘이라는 원형건물에 구현된 감시 원리가 현대사회 전반으로 스며들면서 규율사회 기본원리인 감시 메커니즘을 낳았다고 보았다. 이 메커니즘은 교도소만이 아니라 위계적 질서가 강한 군대·학교·공장 등 다양한 조직을 포함한다. 파놉티콘 감시원리가 사회 곳곳에 자동규율장치로 확대돼 통제의 내면화를 일반화했다는 것이다.

디지털 사회에서의 파놉티콘은 일방적 감시가 아닌 상호감시가 가능한 ‘시놉티콘(synopticon)’으로 발전했다. 과거처럼 소수만이 권력과 언론을 독점하고 다수 일반시민을 통제하는 체제가 아니라 일반시민 역시 그들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양방향 감시가 가능한 시놉티콘은 인터넷 발전과 궤적을 같이한다.

포괄적 디지털 기록은 원형감옥보다 훨씬 심각하다. 디지털 사회에서는 우리의 모든 언행(言行)이 기록·저장된다. 우리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는지, 그 모든 것이 기록되고 관찰된다. CCTV는 물론이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신용카드·교통카드 등 디지털 기기나 매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파놉티콘이 형성된다. 원형감옥이 사람의 심리적 공간을 압박한다면 디지털 기록은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면서 사람 마음을 통제·압박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스템에 의해 자신의 행동이 통제당하고 결국 스스로 행동을 규제하게 된다. 과거 지식엘리트층이 보이지 않는 시스템 통제 주체라면 대다수 피지배층은 권력 네트워크 주변부에서 보여지는 존재였다. 그러나 오늘날 통제자와 대상자 모두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변해 다(多)중심 혹은 분산된 네트워크로 서로를 바라보게 됐다.

‘빅브러더’가 정보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다듬어진 관리적 권력이라면 ‘스몰시스터’는 불특정다수에 의해 균형을 이루는 자생적 권력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이 두 개념은 서로가 서로를 통제하고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변했다. 빅브러더가 사회 안전성 확보를 위해 CCTV를 설치한다면 스몰시스터는 인터넷으로 사생활 침해와 전방위적 감시가 난무한다고 맞선다. 이렇게 스몰시스터는 참여와 공유 문화를 조성하면서 개방화된 사회를 선도해간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 양과 질이 권력의 차이를 가져온다. 디지털 사회에서는 개인 차원이 아닌 집단 차원에서 디지털 활용능력 여하에 따라 네트워크 효과를 발생시킨다.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는 기존 권위를 깨뜨리고 모든 계층구도를 평평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소수 기득권 세력이 유지하고 있던 전통적 힘의 중심을 개개인에게로 분산시키면서 사회적 권력관계가 재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손영동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 viking@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