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79>“지도자는 사심 없어야”, 정보통신혁명의 산증인 서정욱 전 과기부 장관

서정욱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지도자는 사심이 없어야 한다”면서 “젊은이들은 99%의 평범함 속에서 1%의 비범함을 찾아야 한다. 그게 창조경제”라고 강조했다. 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m
<서정욱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지도자는 사심이 없어야 한다”면서 “젊은이들은 99%의 평범함 속에서 1%의 비범함을 찾아야 한다. 그게 창조경제”라고 강조했다. 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m>

서정욱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산·학·연·관을 두루 거친 한국 통신 혁명의 산증인이다.

서 전 장관은 한국 정보통신기술(ICT) 역사의 이정표인 전전자교환기(TDX) 개발과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의 세계 첫 상용화를 주도했다.

그는 일에 관한 한 완벽주의자다. `미쳐야 미친다`를 구호로 내건 그의 리더십은 엄격하고 치밀했다. 그는 국내에 처음 품질관리를 도입, TDX 개발에 적용했다.

그의 별칭은 독종이다. 그는 평생 상식과 원칙으로 일관했다. 이권이 걸린 각종 통신 사업을 주도했지만 한 번도 구설(口舌)에 오르지 않았다.

서 전 장관의 경력은 화려하다. 1957년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공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텍사스A&M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1970년에 귀국, 국방과학연구소(ADD) 창설에 참여했다. 국내 최초로 국산 무전기인 K-PRC6를 개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소장까지 승진했다. 이후 TDX사업단장 겸 품질보증단장으로 있으면서 1가구 1전화기 시대를 열었다. 과학기술처 차관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을 역임한 후 이동통신관리단장으로서 세계 첫 CDMA 상용화를 이룩했다.

1995년 3월 한국이동통신 사장(현 SK텔레콤)과 부회장을 지내고 초당대 총장을 거쳐 김대중 정부에서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일했다. 이후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 이사장과 정부무역추진위원장, 산업기술발전심의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지난 11월 29일 오후에 만난 서 전 장관은 “지도자는 사심이 없어야 한다”면서 “젊은이들은 99%의 평범함 속에서 1%의 비범함을 찾아야 한다. 그게 창조경제”라고 강조했다.

[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79>“지도자는 사심 없어야”, 정보통신혁명의 산증인 서정욱 전 과기부 장관

-요즘 근황은.

▲아마추어 무선 햄에 푹 빠져 있다. 국정이 혼란스러워서 참담한 심정이다. 사람을 잘 써야 한다.

-언제부터 아마추어 무선을 시작했나.

▲초등학생 때부터다. 서울 청계천과 장사동을 다니면서 부품을 구입, 무전기를 조립했다. 6·25가 터져 부산으로 피란을 가서도 국제시장을 매일 돌아다녔다. 집에 불을 낸 적도 있었다. 취미로 공부한 게 한국 최초로 무전기를 개발하고, 나중에 TDX 개발과 CDMA 상용화로 이어졌다.

-ADD로 간 이유는.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자 신응준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부소장(작고)이 보자고 해서 갔더니 ADD가 출범하니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된다고 했다. 1970년 ADD 창설 후 신 부소장이 초대 소장으로 발령 나고 나도 그곳으로 갔다. 나는 모든 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자비를 모아 국내 최초로 국산 분대용 무전기(KPRC-6)를 개발했다. 내가 개발한 무전기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직접 통화를 했다. 박 대통령이 “애로 사항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기에 “무전기는 정식 사업이 아니어서 연구원과 연구비가 없다”고 했더니 무전기 개발이 ADD 정식 과제로 채택됐다. 그로 인해 20평에 불과하던 연구실은 건물 한 층을 다 사용하게 됐다.

서 박사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제1회 국방과학상을 받았다. 이어서 부소장을 거쳐 소장으로 일했다. 당시 ADD 소장은 장관급이었다. 그는 임기를 마친 후 서울대 교수로 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의 삶에 일대 변곡점이 등장했다.

-어떻게 KT로 오게 됐나.

▲1983년 여름 당시 오명 체신부 차관(전 과기 부총리)과 경상현 KT 부사장(작고·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만나자고 하더니 부탁했다. 처음에는 자문역을 해 달라고 했다. 이 일은 국가 명운이 걸린 일이었다. 그해 말 이우재 한국통신 사장(현 KT·전 체신부 장관)이 “함께 일해요”라고 했다. 그래서 TDX 개발단장 겸 품질보증단장으로 일했다. 이 사장은 나를 만나면 늘 “미안해요. 수고하세요”라고 했다.

서 전 장관은 사무실을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마련해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다. 그 대신 본사에 사무실을 마련해 주고 사장 직속으로 품질보증단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국내에 품질보증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다. 그는 조달 규정과 절차를 변경했다. 그는 당시로선 파격으로, 조직도 정형화하지 않고 인사권도 행사하지 않았다. 부서 책임자가 함께 일할 사람을 뽑도록 했다.

-당시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맡았나.

▲한국통신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국가가 나를 원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길이라 하더라도 가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이권이나 돈은 초월했다. 모든 걸 상식과 원칙에 따라 처리했다.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하니 욕심 낼 일이 없었다. 직원들은 업체에 가서 커피 한 잔 얻어 마시지 않았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는 법이다. 상식에 벗어나지 않아야 큰일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한번은 상이용사들이 몰려왔다. 내가 품질 관리를 엄격히 하는 바람에 납품을 못하게 된 모 업체가 상이용사들을 동원한 것이다. 경비실에서 빨리 피하라고 연락이 왔다. 나는 피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엘리베이터 앞에 나가 그들을 기다렸다. 내 얼굴을 모르는 그들이 “서정욱 나와”라고 소리쳤다. “내가 서정욱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을 사무실로 안내해 품질보증의 필요성을 소상히 설명했다. 그들이 나중에는 “우리가 잘못했다”며 돌아갔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데 윤동윤 당시 체신부 정책국장(전 체신부 장관)이 적극 도와 줬다. 그 인연이 나중에 CDMA 세계 첫 상용화로 이어졌다.

[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79>“지도자는 사심 없어야”, 정보통신혁명의 산증인 서정욱 전 과기부 장관

-독종이라고 불렸다.

▲일에 관해선 엄격하게 했다. 밤샘을 한 직원들에게 이튿날 새벽에 출근해서 잘못한 게 있으면 야단을 쳤으니 당시 직원들 입장에선 내게 서운한 게 많았을 것이다. 인심도 잃었고 욕도 많이 먹었다. 하지만 그건 사익(私益)을 위한 게 아니라 국가를 위해 그랬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TDX를 세계 10번째로 개발했다. 나는 룸살롱을 비롯해 술집에 가 본 일이 없다. 인사 청탁도 들어주지 않고 외부 인사와 저녁 만남도 뿌리쳤다. 이 바람에 `융통성이 없다`거나 `건방지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원칙을 고수했다. 내가 그러니 직원들도 그렇게 했다. 그런 자세로 모두가 일을 하다 보니 해보지 않은 일을 성공했다. 내 기준점은 가장 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담쟁이덩굴을 보라. 담을 오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나는 열심히 일한 사람이 잘못하면 내가 책임을 졌다. 그리고 내가 체험하지 않은 것은 남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단장 시절에 전국 읍, 면 단위까지 뛰어다녔다. 1년이면 자동차 주행미터기가 한 바퀴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다. 언제라도 현장에 문제가 생기면 5분 대기조처럼 달려갔다.

-이동통신관리단장은 어떻게 맡았나.

▲1993년 여름 윤동윤 당시 체신부 장관이 만나자고 해서 만났더니 그가 요청했다. 윤 장관의 CDMA 상용화 의지와 충정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윤 장관은 내가 일을 하면서 `욕을 많이 먹는다`고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CDMA는 한국이 처음 상용화했는데 휴대폰 강국으로 가는 디딤돌이 됐다.

-남들이 피하는 일을 맡았다.

▲모든 게 국가를 위한 일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우리나라를 위한 일을 외국인이 해 주겠는가. 힘들어도 우리가 해야 한다. 그런 일을 자신의 일신(一身)만 생각해서 회피한다면 국민의 도리가 아니다. 국가가 나를 차출한 건 개인으로 영광이다. 나는 일이 끝나면 새로운 일을 찾아 늘 떠났다.

[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79>“지도자는 사심 없어야”, 정보통신혁명의 산증인 서정욱 전 과기부 장관

-일하면서 `미쳐야 미친다`를 강조했다.

▲그렇게 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일부는 내 진의를 오해하던데 자기가 하는 일에 미칠 정도로 몰입하지 않으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TDX 개발이나 CDMA 상용화 과정에 수많은 연구진이 참여했다. 그들의 땀과 열정이 성공 요인이다. 내 뜻에 따라 함께 일한 모든 분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SK로 가게 된 이유는.

▲최종현 전 SK회장(작고)이 간곡히 부탁했다. 당시 나는 서울대 교수로 가기로 한 상태였다.

-과기부 장관으로는 어떻게 입각했는가.

▲전임이 강창희 장관(전 국회의장)이다. 강 장관이 국회 통신과학기술위원장으로 있던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그가 나를 후임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9월 KAIST에서 미래전략대상을 준다기에 서로 양보했다. 그랬더니 나중에 공동수상자로 결정, 함께 상을 받았다.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다.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한다. 99%의 평범함 속에서 1%의 비범함을 찾아야 한다. 그게 창조경제다.

-지도자의 조건은.

▲우선 사심(私心)이 없어야 한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미국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에서 한 연설에서 의무, 명예, 조국을 강조했다. 그런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을 모아 비범한 일을 해야 한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대관세찰(大觀細察)이다. 넓게 보고 세밀하게 살피라는 의미다. 국가의 일은 크게 봐야 한다. 하지만 세세한 것까지 따져 봐야 한다. 취미는 아마추어 무선햄이다.

서 전 장관은 철탑산업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황조근정훈장, 금탑산업훈장, 한국공학한림원 대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미래를 열어온 사람들` `나눌수록 많아진다`(공저) 등 10여권이 있다.

이현덕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