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새옹지마

[관망경]새옹지마

지난 7월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소재에 대한 대 한국 수출 규제가 시작되고 우리 산업은 위기를 경험했다. 수출의 대들보이자 미래 산업의 교두보로 여겨지는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장이 멈춰 설 수 있다는 우려감이 팽배했다. 다행히 정부와 산업계, 국민이 협력해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발 빠르게 대체재를 찾기 위해 공무원과 업계가 해외로 뛰었고, 기술을 확보한 소재는 국산화를 위해 칼을 갈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특별법을 만들고, 산업 구조 생태계를 다지는 일에 착수했다. 많은 국민이 평상시에는 명칭도 모르고 있던 불화수소·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일본을 넘어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퍼졌다. 이는 자발적인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일본 수출 규제가 시작되고 약 5개월 지난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반도체 공정의 세정제로 쓰이는 불화수소(불산)를 국내 중소기업이 직접 생산해서 공정에 투입할 시기가 다 왔다는 소식이 들리고, 일본 기업이 국내에 포토레지스트 공장을 세우려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대기업은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터득했고, 중소기업은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사례다. 위기(危機)란 말에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유예로 일본 수출 규제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대화가 이제 시작됐다. 이번 달 양국 국장급 인사가 곧 얼굴을 맞댄다. 한·일 간 만남에서 우리 측 인사가 국익에 우선하는 게 무엇인지 차분히 따져서 회의에 임해야 한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