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가자"…日 반도체 소재업체 생산 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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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소재 규제 길어지면서
공급망 관리 이탈 위기감 커져
연구시설·생산거점 현지화로
주요 고객사 제품 납기 줄이고
기술 주도 국내업체와 관계 개선

일본 반도체 소재업체가 '한국행 티켓'을 속속 구매하고 있다. 지난해 자국 정부가 한국을 상대로 내린 수출 규제가 장기화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세계 공급망관리(SCM)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본 업체는 한국에 연구시설과 주요 제품 생산 거점을 마련하면서 현지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화학제품 전문 업체 아데카(ADEKA)는 전북 전주 생산 거점에서 전략 제품을 생산한다. 일본 이바라기현 소재 가시마 공장에서 한국으로 수출하던 일부 반도체 재료를 전주에서 제조한다. 업계는 아데카가 삼성전자에 공급할 'Cp하프늄' 제품을 생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Cp하프늄은 회로 누설 전류를 차단하는 고유전체(High-K) 박막을 씌울 때 사용되는 전구체다. 그동안 Cp지르코늄을 활용한 소자 업체는 D램 미세화에 따라 차세대 물질인 Cp하프늄을 채택하는 빈도를 늘리고 있다. 아데카는 삼성전자가 사용하는 D램 고유전율 프리커서 상당량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삼불화질소(NF3)를 한국 반도체 제조사에 공급하는 일본 간토덴카공업도 충남 천안에 신공장을 가동한다. NF3는 화학기상증착(CVD) 장비 챔버 잔류물을 제거하는 세정가스다. CVD 공정 횟수가 증가할수록 사용량이 늘어나 공정미세화, 생산량 확대 등을 추진하는 반도체 업체에 필수 품목이다. 간토덴카공업은 천안공장에 별도의 연구 시설을 구축, 개발 역량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일본 반도체 소재업체의 한국행은 자국 정부의 까다로운 수출 규제를 피하는 한편 주요 고객사에 공급하는 제품의 납기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기술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과 장기 거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영업 전략으로 분석된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대 한국 수출 규제를 계기로 주요 기업과 핵심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 및 대체품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기존 고객사를 잡기 위한 일본 업체와 함께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빈틈을 노려 한국 반도체 기업 공급망에 진입하려는 일본 기업의 한국행도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TEL 평택기술지원센터
TEL 평택기술지원센터

미국 화학소재 기업 듀폰은 내년까지 2800만달러(약 325억원)를 투자, 한국에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PR) 생산 공장을 구축한다. EUV용 PR는 일본이 지난해 7월부터 수출 규제를 단행한 3개 품목의 하나다. 일본 도쿄오카공업(TOK)도 인천 송도에 마련한 공장에서 EUV용 PR 생산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3위 반도체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TEL)은 최근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 공장이 위치한 경기도 평택에 대규모 고객사 지원센터를 마련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협회 상무는 8일 “일본의 많은 반도체 소재업체가 한국 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여러 기업이 한국에 올 수 있도록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규제 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