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의료빅데이터, 양보다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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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영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안전측정연구소장
<안봉영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안전측정연구소장>

중국 알리바바 최고 경영자 마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정보기술(IT)보다 데이터 기술(DT)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기업이 세계시장을 제패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의료분야 전문가들은 미래 의료산업도 의료데이터를 어떻게 측정하고, 통합하고, 분석하느냐에 달라질 것이라 지적한다. 의료 인공지능(AI)은 물론 헬스케어와 원격의료, 맞춤형 신약 및 의료기기 개발 등에서 의료데이터 확보와 활용 능력이 곧 경쟁력이라는 얘기다.

의료 AI에 필수적인 세 가지는 의학 지식, AI 알고리즘, 의료데이터다.

의학 지식은 이미 잘 정리돼 있고, AI 알고리즘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어 의료 AI에 적용하는 데 무리가 없다. 반면 의료데이터는 환자의 지역, 성별, 나이 등에 따른 광범위한 데이터 확보와 AI의 학습을 위한 데이터 표준화, 일반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2만개가 넘는 건강검진기관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상회하는 의료영상 장비, 그리고 우수한 의료인력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의료기술 강국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데이터는 넘쳐 나지만 가치 있는 데이터는 부족하다' '의료 AI를 가르칠 데이터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집한 의료데이터의 낮은 신뢰도 때문이다.

데이터는 여러 방식으로 측정해 얻는다. 신뢰성 있는 데이터를 얻으려면 당연히 측정이나 결과의 처리 절차부터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의료진단 측정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190여개 분야에서 국가 측정표준을 확립하고 소급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그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인체가 측정 대상이 되는 의료분야의 경우, 의료계 자체의 경험적 기준은 있으나 국가적으로 신뢰성을 얻을 수 있는 과학적 기준과는 연결되지 않은 분야가 많다.

기본적인 의료데이터라 할 수 있는 혈압, 안압, 피검사, 소변 검사 중 일부분에는 '정도 관리' 체계가 도입돼 있으나 국가 측정표준체계와 연계가 약하다. 각종 검사 수치와 심전도, 호흡 등 시계열 변동 데이터, 의료 진단의 70%를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진 초음파, 컴퓨터 단층촬영(CT), 광간섭단층촬영(OCT), 자기공명영상(MRI) 등 영상 정보는 표준화와 정도 관리가 취약하다.

의료영상 데이터의 표준 관리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탓에 의사들은 다른 병원 정보를 신뢰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병원을 옮길 때마다 검사와 촬영을 반복하며 신체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 병원 간 정보 교류가 빈번한 현재 의료체계에서, 원격의료나 AI를 통한 의료기술 개발을 위해서도 의료데이터 측정 표준화는 필수 선결과제다.

대한민국은 IT 강국이며, 데이터 강국으로 발전할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정부에서 의료분야 빅데이터 구축을 위한 플랫폼 개발 구축에 투자를 시작했지만 이는 제대로 된 데이터가 모일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래 의료기술과 산업 경쟁력은 '얼마나 방대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느냐'가 아닌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가'로 결정된다. 신뢰성 있는 의료데이터를 모으기 위해서는 국가측정표준체계와 연계한 의료측정과 데이터 관리 시스템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안봉영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안전측정연구소장 ahnby@kris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