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한국 반도체 인력 빼가기' 노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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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채용사이트에 버젓이 공고
삼성·SK하이닉스 기술력 노려
국가 차원 보호·대우 장치 필요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국내 반도체 핵심 인력을 채용하기 위한 시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경력자를 뽑는다는 공고가 국내 채용 사이트 곳곳에서 확인됐다. 그동안 물밑 접촉을 통해 소규모로 이뤄지던 시도가 수면 위로 드러난 셈이다. 국내 인력이 중국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늘수록 중국 업체들이 핵심 기술 노하우를 습득, 한국 반도체 업체를 바짝 뒤쫓을 공산이 높아진다. 국가 차원에서 핵심 기술을 갖춘 인력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내 유력 채용정보 사이트에 올라온 해외 근무 가능한 D램 설계 경력직 공고. <사진=채용정보 사이트 갈무리>
<국내 유력 채용정보 사이트에 올라온 해외 근무 가능한 D램 설계 경력직 공고. <사진=채용정보 사이트 갈무리>>

1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유력 채용정보 웹사이트에는 중국 지역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할 경력 직원을 모집하는 공고가 다수 올라왔다. 해당 공고는 국내 헤드헌팅 업체가 작성했다. 특히 D램 설계, 국내 업체 근무 경력을 우대한다는 내용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반도체 에치(식각) 프로세스 경력직 엔지니어 채용 공고. <사진=채용정보사이트 갈무리>
<반도체 에치(식각) 프로세스 경력직 엔지니어 채용 공고. <사진=채용정보사이트 갈무리>>

식각(에치), 포토(노광), 열처리(퍼니스) 등 반도체 핵심 공정을 세세하게 나눠 엔지니어를 모집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한 채용정보 사이트에 올라온 D램 설계 경력직 지원 채용 공고. S,H 반도체회사 출신 공정경험자 우대가 자격요건에 명시돼 있다. 근무지는 중국 전지역. <사진=채용정보 사이트 갈무리>
<한 채용정보 사이트에 올라온 D램 설계 경력직 지원 채용 공고. S,H 반도체회사 출신 공정경험자 우대가 자격요건에 명시돼 있다. 근무지는 중국 전지역. <사진=채용정보 사이트 갈무리>>

한 예로 D램 제품 퍼니스 공정 경력자 모집 공고를 올린 헤드헌팅 업체는 “30~45살의 S(삼성전자), H(SK하이닉스) 반도체 회사 출신 공정 경험자를 우대한다”고 명시했다.

구체적인 중국 반도체 회사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중국 전 지역'을 근무 조건으로 내건 것으로 미뤄 봤을 때 푸젠진화, 창신메모리(CXMT) 등 중국 유력 메모리 반도체 업체의 채용 조건인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업체에서 국내 반도체 인력을 호시탐탐 노린 건 수년 전부터 있었다. 헤드헌팅 업체 등이 물밑에서 국내 엔지니어와 접촉, 거액의 연봉을 제시한다는 정황이 발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채용사이트 등에서 공공연하게 다수의 경력직 채용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이례적이다.

중국 업체들은 중앙 정부의 '반도체 굴기' 기조 아래 한국, 대만 등 각 반도체 선진국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각국의 반도체 기술 노하우를 빠르게 흡수, 반도체 내재화에 속도를 붙이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세계 메모리업계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최첨단 메모리 반도체 설계 및 공정 노하우를 익힌 인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XMT의 DDR4 메모리. <사진=CXMT>
<CXMT의 DDR4 메모리. <사진=CXMT>>
128단 낸드플래시 개발완료를 밝힌 YMTC 우한 공장 조감도. <사진=YMTC>
<128단 낸드플래시 개발완료를 밝힌 YMTC 우한 공장 조감도. <사진=YMTC>>

실제 최근 10나노대 후반 D램을 개발했다고 밝힌 CXMT도 복수의 한국 경력 엔지니어를 영입, 제품 개발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국내 메모리 반도체 핵심 인력 영입을 점점 노골화하는 만큼 국가 차원의 인력 보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 기술은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돼 있다. 국내 인력이 해외에 관련 기술을 유출하면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문서, 제품 설계도 등을 해외로 빼돌리는 기술 유출 행위는 법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직업 선택의 자유까지 제한할 수는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핵심 인력이 중국 자본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한 국가 차원의 대우와 보호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들도 인력 유출 방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관련 인력이 국가 핵심 기술을 갖추고 있는 만큼 정부도 적극 나서서 인력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우리 문화를 보전하기 위해 인간문화재를 지정하는 것처럼 우리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핵심 인력에 다양한 혜택을 주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