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미래지향적 방발기금제도 논의의 장 마련해야

홍종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박사
홍종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박사

방송통신발전기금(이하 방발기금)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방발기금 논란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몇 년 동안 방발기금 관련 세미나가 우후죽순 열렸고,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에 대응해 일부 규정을 조금씩 손보기도 했다.

20대 국회에서 다수의 방발기금 개정 법률안이 제출된 바 있고, 21대 국회에서도 다시 개정안이 발의되기 시작했다.

방발기금은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따라 사업자가 부담하는 주파수 할당 대가와 분담금을 주 재원으로 하여 방송통신 분야 진흥을 위해 운용되는 기금이다. 방발기금이 현재 골격으로 출발한 것이 2010년이다. 강산도 변했고 사업자도 많아졌고 시장 생태계도 크게 달라졌으니 그동안의 변화를 반영한 제도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논쟁의 지형을 살펴보면 개선 작업이 녹록하지 않을 것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쟁점 사안이 많을 뿐만 아니라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중첩된 형태로 얽혀 있다.

주무 부처나 국회 상임위원회 의원별 입장 차도 도드라진다. 그동안 논란은 많았지만 쉽게 정리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방발기금 제도 개선이 쉽지 않은 것은 기금 부과의 정당성이나 부과 대상 사업자 확대 문제에서 잘 드러난다. 현재 분담금을 내는 사업자는 지상파 방송, 케이블TV, 위성방송, 인터넷(IP)TV, 종합편성채널, 보도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TV홈쇼핑채널 등 모두 허가 또는 승인 사업자이다. 그동안 기금 부과의 정당성은 주파수 자원 희소성과 공공성에 따라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업자에 한해 사업권을 부여하는 대신 독점·배타성 면허에 대한 반대급부 차원에서 기금을 징수하는 데서 찾았다.

그러나 미디어 환경 변화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주파수 희소성이 소멸되고 배타성 사업권이 자동으로 초과이윤을 보장하는 시장 구조가 아니라는 주장이 지상파 방송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공공 책임 부여 차원의 방발기금 징수 정당성이 약화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존 방발기금 징수 대상이 아닌 CJ ENM 등 복수채널사용사업자(MPP), 네이버 같은 포털 사업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자에게 기금 징수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디어 시장에서 이들 사업자의 매출 증가 및 영향력 확대에 따른 공공 책임 부여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기금 부과 형평성 문제도 논쟁거리다. 사업자별 부과 대상 매출액이 다르다. 지상파·종합편성채널·보도전문채널은 방송광고 매출액 대상, 케이블TV·위성방송·IPTV는 방송서비스 매출액 기준, TV홈쇼핑채널은 방송사업 관련 영업이익 대상으로 각각 일정 비율의 기금이 부과된다. 애초에 방송 매체별 사업 특성을 반영, 주 매출 방식을 징수 기준으로 삼은 까닭이다.

그러나 방송사업자의 매출 구조가 다각화되고 기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는 매출이 늘고 있다. 광고 매출이 감소하는 대신 협찬 매출과 재송신 매출액이 증가하는 지상파 방송이 대표 사례다.

전체 방송 매출 기준으로 기금을 납부하는 유료방송사는 형평성 차원에서 징수 기준을 단일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금 운용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금 지출도 논란이다. 아리랑TV, 언론중재위원회, 국악방송 지원을 대표로 들 수 있다. 이들은 대외 국가 홍보, 언론 지원, 문화예술 진흥 목적 기관으로서 방송·통신 진흥과의 관련성이 떨어져 기금 운용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방송 진영에서 제기되고 있다.

방발기금 제도를 둘러싼 전방위 논란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과정이다. 미디어 환경 변화 및 관련 산업 재편이 가속되면서 시장 내 경쟁 정책을 근본부터 거시로 재설정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방발기금 제도는 현 미디어 시장 구조와 재편 방향성, 사업자의 사회 영향력과 공공 책임 등에 대한 제도 개선 전반에 걸친 논의와도 맞물려 있다. 기금 부과 대상 확대, 징수 기준 단일화, 미래 지향의 기금 활용 방안 마련 등 방발기금 제도 개선이 특정 사안에 대한 미시 정책 대응이나 이해관계 조정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발기금 문제는 중장기 관점에서 시장 내 다양한 사업자군 간 경쟁 관계 재정립, 면허체계 정비 등 거시 정책 수립과 연동돼야만 근본 해결을 도모할 수 있는 정책 사안이다. 사업자, 정부 부처, 국회가 각개약진하는 형태로는 논쟁만 확산시킬 뿐이다.

자사 중심 사업자, 특정 사업자를 대변하는 국회, 관할 영역 중심의 정부 부처가 안고 있는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포괄 협의 기구를 구성하는 한편 미래 지향성 기금 제도를 투명하게 개방해서 논의하는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홍종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박사 kangtow@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