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살을 빼봤다. 1년 동안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어느 날 게임을 하고 있는데 이런 말을 들었다. 방구석에서 게임이나 하니 살찐다고. 거울을 봤다. 화가 나기보다는 그냥 멍해졌다. 취재한답시고 끼니를 거르고 늦게까지 술을 먹는 등 절제되지 않은 생활의 결과물은 두터운 지방층으로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아 너무 나를 내버려 뒀구나”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때 짝꿍을 괴롭히고 도망갈 때 이후로는 전력질주를 해본 적이 없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각개를 할 때도 '아 그냥 집에 늦게 가고 말지 왜 숨차게 뛰어' 이랬다.

살을 빼보려 해 본 적은 있다. 1년 치 헬스장을 등록해 보름 가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서 의지박약을 극복해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운동을 찾았다. 그러던 중 시리어스게임(기능성게임) 세미나에 갔다. 겜돌이 입장에서는 게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그런 게임들이었다. 너무 기능성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재미가 부족했다. 차라리 시중에 나와 있는 게이미피케이션과 운동을 결합한 게임이 더 유용해 보였다. 당시 세미나에 참가했던 한 트레이너는 “그런 게임은 운동효과가 적어 살을 뺄 수 없다”고 말했다.

궁금했다. 정말로 효과가 없는지. 높은 수준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소용이 없는 것인지. 어쩌면 단순히 게임이라고 폄훼 당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게임기자로 확인해볼 의무가 있었다.

게임만 하니까 살이 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머리는 부인하고 있었지만 거울은 진실이라고 말했다.
<게임만 하니까 살이 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머리는 부인하고 있었지만 거울은 진실이라고 말했다.>

◇ 뭘해도 빠지는 고도비만에게 게임은 '뭘'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처음으로 고른 게임은 닌텐도 스위치 링피트였다. 링피트 피트니스 효과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전문 트레이너들은 어느 정도 도움은 될지언정 운동 효과를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저중량이라 부하가 걸리지 않고 올바른 자세로 가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현직 트레이너는 “차라리 헬스장에 나와서 사우나라도 하고 가는 게 나을 걸”이라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같은 고도 비만인에게는 효과가 있었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을 움직이게 하니 효과가 없는 게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가뿐했다. 조금 숨을 몰아쉬는 정도였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눈을 떴는데 몸이 이상했다. 어깨와 삼두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둔근에서 뻐근함이 올라왔다. 걸을 때마다 내전근이 소리를 질렀다.

워낙에 비루한 몸인지라 하루 쉴까 했다. 고등학교 동창 녀석은 “강도가 낮은 운동은 계속 지속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정상적인 몸이 아니었지만 신기하게도 몸에서 열이 나고 땀이 날수록 편한 느낌이 들었다. 다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취감도 느껴졌다. 지속되는 미약한 근육통은 기분을 좋게 했다.

여전히 턱선은 없지만 효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턱선은 없지만 효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링피트는 레벨이 존재한다. 몬스터를 타격할 때 데미지 표시가 나온다. 머리 위 데미지 표시를 1이라도 올릴려는 게 겜돌이다. 몸이 힘든 것보다 내 캐릭터가 약한 걸 용납하지 못하는 게 겜돌이다. '내 눈앞에 몬스터가 있고 그걸 제거해야만 한다'는 겜돌이 DNA에 각인된 메시지가 뇌세포와 근육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3개월 정도 매일 링피트를 하니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극적인 효과는 아니라도 피부에 탄력이 좀 붙었다. 체중도 두 자리 수에 진입했다. 무엇보다 양말을 신을 때 숨이 차지 않아서 좋았다.

조금 지겨워져서 플레이스테이션4 저스트댄스 루틴을 추가했다. 동작인식 카메라도 새로 샀다. 원래 운동은 새로운 장비 사는 재미로 하는 거라고 그랬다.

저스트댄스는 화면에 나오는 춤을 따라 하는 게임이다. 카메라가 동작을 인식해 판정을 내린다. 전 세계 히트곡에 맞춰 추는 거라 신이 난다. 온라인 플레이가 돼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 또는 협동도 할 수 있다.

한국 게이머가 PvP에서 질 수는 없었다. 타고난 몸치였지만 반복 숙달을 통해 국군도수체조만큼 자다가도 출 수 있게 됐다.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운동 효과가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활동량이 제법 많다. 2~3곡을 추면 땀이 흐른다. 런지와 풀업과 같은 근력운동과 섞인 춤도 많았다. 아이돌처럼 춤을 잘 춘다는 착각도 들게 했다.

◇논문으로만 보던 게이미피케이션 효과를 직접 체험했다

가민 워치로 일상과 운동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다. 내가 일상 속 수치화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 문명이나 삼국지 같은 전략시뮬레이션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숫자를 분석하고 목표를 잡는다. 심박, 걸음, 활동량, 소모열량, 수면시간, 수면 질, 보폭, 케이던스, 속도, 진동 등등 측정할 수 있는 센서가 늘어날수록 더 재미있다.

4월, 5월에는 연속해서 확진자가 줄어 밖에 나가서 운동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한빛소프트 런데이를 보고 나서다. 게임이 알려준 운동의 재미 때문이었을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러닝화도 샀다. 운동은 역시 장비사는 재미다.

그러나 6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시 강화됐다. 때는 이때다 싶어 평소에 가지고 싶었던 즈위프트 환경을 꾸몄다. 주거지가 아파트라 방진·방음매트로 방을 도배하고 조용하다는 고정 로라를 사들였다. 300만원 정도 들었다. 자전거는 있어서 추가비용은 들지 않았다. 콘솔게임으로 하는 운동은 아무리 많이 들어봐야 40만원이다. 확실히 게임은 가성비가 좋은 취미라는 걸 확인했다.

10년 자전거 타면서 처음 피팅도 받고 집에 로라도 설치했다
<10년 자전거 타면서 처음 피팅도 받고 집에 로라도 설치했다>

즈위프트는 자전거를 탈 때 발생하는 파워미터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상 세계에서 레이싱을 할 수 있다. 실제 존재하는 도시에서 라이딩을 즐길 수도 있다. 또는 특정 목적에 맞춰 트레이닝을 할 수도 있다. 레벨이 존재하고 순위가 존재하며 포인트로 장비도 살 수 있다. 흡사 MMORPG를 하는 느낌이다.

파워가 숫자로 표현되기 때문에 역시나 도전 의식을 자극한다. 침 흘리며 타게 만든다. 서울 북악 평균 180W정도 포자였는데 어느덧 평균 220-230W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심박을 보면서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벌도 가능하다. 링피트나 저스트댄스는 지속적으로 유산소를 하는 개념이다. 즈위프트로 인터벌을 끼워 넣으면서 더 높은 운동효과를 낼 수 있었다.

살이 빠지니 카메라에 잡히는 모습도 더 보기 좋아졌다. 과거 방송과 비교해보고 나도 목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살이 빠지니 카메라에 잡히는 모습도 더 보기 좋아졌다. 과거 방송과 비교해보고 나도 목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기적으로 긴 시간을 투자 못할 때는 짧은 게임으로 유지

즈위프트 탈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는 닌텐도 스위치 피트니스 복싱을 했다. 주말마다 밖에 나가야 하는 스케쥴이어서 운동을 꾸준히 정기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 적어도 살이 더 찌지는 않았다.

피트니스 복싱은 복싱 움직임을 하면서 올라오는 노트를 맞추는 게임이다. 아주 약간의 복싱을 배울 수는 있지만 전문적인 동작은 아니다. 피트니스 효과를 위해 같은 동작을 오른쪽 왼쪽으로 반복하는 등 복싱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복싱을 하는 듯한 느낌은 든다.

'테이큰'의 리암 리슨이 된 것 마냥 '딸 밤길을 지켜주는 아버지' 따위의 망상을 하면서 따라 하니 재미가 제법 붙었다.

이 때부터는 뚱뚱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취재원들은 몰라보겠다고 그러기도 했다. 뿌듯했다.
<이 때부터는 뚱뚱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취재원들은 몰라보겠다고 그러기도 했다. 뿌듯했다.>

◇왜 같은 운동인데 게임은 계속하게 되는 걸까

심리학박사에게 물었다. 같은 운동인데 왜 게임은 계속하게 되는 것인지. 생산적 에너지를 증대시키는 '몰입' 때문이란다. 신체적 쾌감을 주로 하는 재미는 심리적 엔트로피, 즉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를 증가시킨다. 너무 좋아 연애를 하더라도 익숙하지면 질리게 되는 현상 같은 거다. 하지만 몰입은 말초적 쾌감과 달리 생산적 에너지를 증대시킨다. 그래서 밤을 새워 무언가를 하고 나서 신체적으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눈을 떴을 때 다시 그것을 하고 싶은 욕구가 든다는 설명이다.

몰입하기 위해서는 숙련을 요구하는데 숙련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조차 보상회를 자극해 즐겁게 느끼도록 해준다. 즉 몰입은 자신의 성향에 맞는 대상을 찾아 경험하게 되는 대표적인 행복 경험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살이 빠지니 정체기가 찾아왔다. 게임 속 아이템도 거의 다 모았고 살도 잘 안 빠지니 예전만큼 재미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삶이 재미없어지는 일까지 겹치니 게임이고 뭐고 다 싫어졌다.

꾸준히 해오던 운동을 하지 않으니 반향은 바로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몸이 부었다. 게임을 좀 오래 하면 손이 부어서 버튼을 누를 때마다 통증이 생기곤 했다. 게임을 하기 위해 다시 게임으로 운동을 하고 나니 괜찮아졌다. 운동이 삶의 활력을 주는 걸 깨달았다.

게임이용장애 민관협의체 구성 때 찍힌 사진과 최근사진. 잘 생겨지는데는 실패했지만 턱은 생겼다.
<게임이용장애 민관협의체 구성 때 찍힌 사진과 최근사진. 잘 생겨지는데는 실패했지만 턱은 생겼다.>

◇호기심으로 시작해 운동게임 효용성 증명...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처음엔 단순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작년 최대 몸무게는 107kg이었다. 올해 5월 초순 72kg까지 뺐다. 이후에 부침이 조금 있었지만 70kg대를 유지했다.

건강검진 결과도 좋았다. 각종 질병이 우려된다고 했었는데 올해 정상범위로 들어갔다. 작년과 비교하면 허리둘레가 11cm가 줄었다. 덕분에 바지를 새롭게 사야 했다. 벨트가 소재뿐 아니라 길이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는 사실도 알았다.

무엇보다 체력적으로 좋아지니 정신도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일상과 업무에서 집중도가 높아졌다. 매사 밝아지는 부차적 효과도 있었다.

확실히 게임은 전문 근력 강화운동이나 인터벌 트레이닝에 비해 그 운동 효과는 낮다. 그러나 계속 게임을 하도록 동기를 유발하게 하는 데는 좋다. 접근성이 좋아 언제든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전거를 타려면 차를 가지고 점프를 뛰어야하지만 게임 속에서는 언제든지 다른 곳을 달릴 수 있다. 오히려 차를 사고 더 안 타게 된 내가 좋은 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전거를 타려면 차를 가지고 점프를 뛰어야하지만 게임 속에서는 언제든지 다른 곳을 달릴 수 있다. 오히려 차를 사고 더 안 타게 된 내가 좋은 예다.>

한계도 존재한다. 현재 시중에 있는 게임이 과거보다는 게임적 요소를 더 많이 갖췄다고 해도 약간 지루한 건 사실이다. 아이템이나 레벨 정도만이 유인요소다.

더 큰 가능성이 열려있는 분야다. 국내 게임사는 리텐션이 좋은 콘텐츠를 잘 만든다. 좋은 콘텐츠와 운동효과를 결합한 게임에 관심을 가진다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경쟁과 데이터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라면 지속 매출도 가능해 보인다. 훌륭한 건강관리 도구로서 게임 저변확대와 인식개선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