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3>첫 과학기술 진흥 5개년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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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월 5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앞줄 왼쪽 두 번째부터)과 송요찬 내각수반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중앙청에서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1962년 1월 5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앞줄 왼쪽 두 번째부터)과 송요찬 내각수반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중앙청에서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기술 분야에 문제는 없나요?” 우리나라의 기술 진흥 5개년 계획 첫 수립은 1962년 초에 국가 최고 통치권자가 한 말 한마디로 시작했다. 그해 1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중앙청 석조전 건물의 2층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회의실 주변으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회의실 주변을 착검한 군인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군사정부 시절이었고, 각 부처 장관은 현역 군인들로 채워졌다. 회의장으로는 군복 어깨에 뻔쩍이는 별을 단 장성들이 차례로 입장했다.

잠시 후 작은 키에 검은 안경을 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송요찬 내각수반과 함께 회의장에 들어섰다. 회의실 맨 앞자리 가운데에 박정희 의장과 송요찬 수반이 앉고 왼편 끝자리에는 김유택 경제기획원 원장이 앉았다. 당시 경제기획원 장관은 원장으로 불렸다. 회의실이 조용해지자 김유택 원장이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지금부터 1962년 경제기획원 업무를 보고하겠습니다.” 김유택 원장의 인사말에 이어 그해 시행할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보고했다. 보고자는 한종직 종합계획국장이었다. 한종직 국장은 경제기획원이 5년 동안 추진할 경제 성장 목표부터 투자계획 등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기침 소리 하나 없는 분위기 속에서 1시간여 동안 진행한 업무보고가 끝났다.

주위 시선들이 박정희 의장에게 쏠렸다. 박정희 의장은 아무 말도 없이 앞에 놓인 담배를 들어 불을 붙이고선 한 모금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약간 쉰 듯, 그러면서도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기술 분야에서 별로 어려운 문제가 없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새로 공장을 건설하는 마당에 우리 기술 수준과 기술자만으로 그 일이 가능한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떤 대책이 있는지. 이 점을 설명해 주기 바랍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의외의 질문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전상근 기술관리과장(현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전 과기처 종합기획실장)의 회고. “그 순간 5개년 계획을 수립한 사람들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당시 한국은행 조사부 출신 경제 전문가와 유명 대학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5개년 계획 수립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이들에게 기술 인식은 별로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니 당시 최고 통치권자의 질문에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때 송정범 경제기획원 부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술 수급에 대해서는 별도로 계획을 수립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박정희 의장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기술 수급이라는 말은 없었다. 송정범 부원장이 그 자리에서 임기응변으로 만든 용어였다. 전상근 과장은 업무보고가 끝나자 사무실로 돌아와 직원들에게 회의실에서 있은 일을 설명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부원장실 비서였다. “부원장께서 전 과장님을 찾으십니다.” 부원장실로 온 전상근 과장을 보자 송정범 부원장이 말했다. “전 과장, 오늘 업무보고에서 말한 기술 수급 계획을 만들어 주세요.” “부원장님, 그 일은 우리 과 업무가 아닌 듯 합니다만….” “전 과장을 비롯해 과 직원들이 기술계 출신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기술에 관한 계획인 만큼 기술과에서 맡는 게 가장 적격이라고 생각하오.”

부원장실을 나온 전상근 과장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사례도 없는 기술 계획을 어떻게 수립해야 할지 막막했다. 전상근 과장은 며칠 고민 끝에 '우리나라 과학기술 전반에 걸쳐 어떤 계획을 수립하는 게 어떨까'하고 생각했다. 그는 먼저 외국 사례를 찾기로 했다. 전상근 과장은 평소 기술협력 관계로 알고 지내 온 주한 미국원조기관 유솜(USOM)의 기술훈련과장 윌리엄 윔스 박사를 찾아갔다. 윔스 박사는 미국인 선교사 아들로서 한국 태생이며, 미국에서 대학교수를 하다 한국에 온 인물이다. “윔스 박사, 혹시 선진 외국의 과학기술 개발 장기 계획에 관한 자료가 있으면 좀 주실 수 없나요.” “이런, 유감입니다. 안타깝게도 어떤 나라도 국가 차원에서 과학기술에 대해 장기 종합계획을 세운 나라는 아직 없는 실정입니다.”

윔스 박사에게 건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그러나 별도리가 없었다. 윔스 박사는 미국 연구개발(R&D) 활동에 관한 일부 자료를 전상근 과장에게 건넸다. 며칠 후 전상근 과장은 송정범 부원장실로 올라갔다. “기술 수급 계획은 여러 가지 해외 연구 자료를 찾고 구상도 했지만 수립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꿔 과학기술 진흥 계획을 세웠으면 합니다만….” 전상근 과장이 구상안을 설명하자 송정범 부원장은 반색했다. “아, 좋아요. 다만 그 계획에서 과학이라는 용어는 되도록 빼도록 하세요. 과학이란 경제개발 계획과 관련이 없는, 학문적인 분야 같소.”

전상근 과장은 국내 처음의 기술 진흥을 위한 장기 종합계획 수립 작업에 착수했다. 최고 통치자의 관심 사안인 만큼 계획안 수립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었다. 계획안 수립은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과가 담당했다. 책임자인 전상근 과장은 미국 퍼듀대 화공과를 졸업했다. 직원인 이응선은 서울대 공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 대학원에서 건축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조경목과 도정섭은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이들은 한국 과학기술 개발의 기본 계획을 수립한다는 자긍심과 사명감에 불타 있었다.

전상근 과장의 회고. “국내 산업계·학계·기술계 지도급 인사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계획 수립에 반영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과학기술을 진흥하려면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계획안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각계를 대표하는 전문가 의견 수렴은 필수였습니다. 송 부원장에게 이런 의견을 보고하고 자문위원회 구성을 건의했습니다.”

송정범 부원장은 전상근 과장의 건의를 흔쾌히 수용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 학계·연구계·산업계 등 저명한 각계 인사 40명으로 과학기술정책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산업계 대표로는 정인욱 강원산업 대표와 조홍제 효성물산 대표 및 전택보 천우사 대표, 학계에서는 김동일 서울대 공대 교수와 한동혁 한양대 교수 및 현신규 서울농대 교수, 정부 연구기관에서는 이채호 국립중앙공업연구소장(현 국가기술표준원)과 정남규 농촌진흥원장(현 농촌진흥청) 등이 들어갔다. 자문위원들은 정부의 과학기술 진흥 5개년 계획 수립에 적극 찬성했다. 전상근 과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수시로 자문위원들을 만나 한국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미래 방안에 대한 지혜를 구했다. 경제기획원에서 정기 자문위원회의도 수차례 열었다. 위원들은 회의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다양한 과학기술 진흥 방안을 제시했다.

자문위원회는 여러 차례 열린 회의에서 과학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두 가지가 꼭 필요하다는 점을 만장일치로 채택, 정부에 건의하기로 뜻을 모았다. 하나는 과학기술 진흥을 범국가 사업으로 추진하고, 예산과 행정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 최고 책임자인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이 과학기술 진흥에 무한한 관심을 기울여서 정부 최우선 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해 2월 6일 오후 2시. 경제기획원 회의실에서 재무부, 국방부, 상공부, 문교부, 농림부, 보사부, 교통부, 체신부, 국토건설청, 법제처 등 관계자와 국립공업연구소장, 국립지질조사소장 등 23명이 참석해 계획안을 논의했다. 2월 10일에는 김유택 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계획안을 심의할 소위원회를 각계 인사 15명으로 구성했다. 소위원회 위원장직은 윤일중 한국전기기술자협회장이 맡았다. 이렇게 만든 제1차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은 그해 3월 27일 각의(현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