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났습니다]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답 없는 연구에서 답 찾는다”

[데스크가 만났습니다]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답 없는 연구에서 답 찾는다”

“답이 없는 연구개발(R&D)에 도전합니다. 누구도 도전하지 않은 연구로 실패 가능성이 높지만, 연구 과정에서 얻는 지식과 경험이 선도형 연구의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은 “추격형 R&D에서 탈피해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도전하는 선도형 R&D 시스템을 KIST에 착근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원장은 지난해 7월 취임과 동시에 KIST의 대변화를 천명했다. 24개나 되는 혁신 과제를 제시했지만, 목표는 단 하나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갖고 안정적으로 연구하는 KIST'

윤 원장은 실패하더라도 과정을 인정해 포상함으로써 도전적 연구를 장려하는 '그랜드 챌린지' 문화를 KIST에 정착시킨다는 목표다. '답없은 연구'는 윤 원장의 이같은 의중을 대표하는 상징적 과제다.

윤 원장은 “현재 8개의 원천 연구 후보군을 놓고 마지막 선정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며 “4~5개 과제가 선정되면 내년부터 5~6년간 긴 호흡을 갖고 안정적으로 연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존 잣대로 보면 '성과'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원없이 도전해 실패한다면 성공에 준하는 지식과 노하우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윤 원장은 안정적 연구 환경 조성을 위해 연구자 평가 제도를 개편했다. 기존 S~D 5단계 평가 등급을 S·A·D 3등급으로 간소화했다. S등급 비중이 늘어나고 B·C 등급을 받은 연구자의 의욕은 고취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답없는 연구' 연구자는 A등급 이상을 받는다. 엄정한 절차를 거쳐 과제를 선정한만큼 연구자에게 최대한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부여한다는 방침이다.

개인 평가 기준은 '맞춤형'으로 전환했다. 연구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논문 등 일부 성과로만 연구자를 평가하는 관행이 연구 자율성을 저해한다는 윤 원장의 철학이자 소신이 반영됐다.

윤 원장은 “취임 이후 수개월 연구자로 구성된 '인사평가제도 개선 TF'를 운영, 평가제도의 디테일을 수정해 제도 정비를 마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윤 원장은 창의적 원천 연구만큼이나 상용 연구의 사업화 성과도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윤 원장은 '연구원에서 개발한 기술이 기업에서 사업화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가 내린 처방은 기술 이전과 상용화 지원의 연계다.

KIST가 독자 모델로 운영하는 '링킹랩'은 이렇게 출범했다. 개발한 기술을 이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KIST가 기업의 상용화까지 지원하는 일종의 협업 연구소다.

윤 원장은 “기업이 데스밸리를 극복하기 위해선 기술 개발자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링킹랩을 현재 3개에서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데스크가 만났습니다]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답 없는 연구에서 답 찾는다”

대담=김원배 통신방송과학부 부장

-취임 일주년을 앞두고 있다. 그간 성과와 소회는.

▲정신없이 바꾸고 개선했다. 취임 초 경영계획서를 본 직원이 내가 제시한 개혁안이 총 24개나 된다고 말해 숫자를 알았다. 24개라고 하지만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게 아니다. 부원장 시절부터 기획했고 시행하려던 아이디어가 대다수다. 핵심은 KIST의 패러다임 쉬프트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갖고 안정적으로 일하는 연구원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생태계를 만드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성과가 곧바로 나올 수도 있고 아니면 이후 원장때 나올 수 있다. 누가 과실을 보든 과거 연구 방식에서 벗어나 도전하고 의욕이 넘치는 기관을 만들 고 싶다. 24개 혁신안의 최종 목표다.

임기 2년차엔 혁신 과제가 모두 시작된다. 조직원도 공감하는 것 같다. 예전엔 나를 보면 슬금슬금 피했는데 이제는 다가와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내부 구성원과 자주 회의를 하며 개선 방안을 만들어 갈 것이다.

-현재 추진하는 과제 중 역점 분야는.

▲그랜드 챌린지다. 이른바 답없는 연구를 기획하고 있다. 최종 8개 후보군을 심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R&D는 그동안 지름길로 선진국의 격차를 좁힌 측면이 있다.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추격형 R&D가 가능했다. 이제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세계 수준에 있는 분야는 우리가 앞설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KIST가 선봉에 서려 한다. 내부 공모를 통해 과제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노화 조절 기술 같은 게 이에 해당한다. 명확한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안된다는 것을 아는 것도 경쟁력이다. 그래야 대안과 선도 연구 과제를 찾을 수 있다.

답 없는 연구 비중은 단계적으로 10% 정도까지 확대하려 한다. 이외에도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연구, 감염병·미세먼지 등 사회문제 해결 연구가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려 한다. 일부 성과가 기업과 사회로 환류되고 그러면서 또 답없는 연구를 찾는 그런 그림이다.

이렇게 해야 노벨상과 같은 업적을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초 타이틀이 붇는 기술이나 연구가 아직은 드물다. 적어도 KIST는 최초·최고를 지향하는 연구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선진국 연구 동향을 따라가고 출연연 연구의 사업화 성과가 97%에 달하는 등 이런 모습은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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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없는 연구에 대한 내부 평가, 분위기는 어떤가.

▲KIST라 한번 해보자는 자신감이 있다. 단순히 도전하고 혁신하라는 메시지만 던진 건 아니다.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랜드 챌린지 선정만으로 수월성을 인정한다. 연구원들도 처음엔 반신반의하다가 지금은 관심이 아주 높다.

물론 연구자는 다른 연구와 동시에 답 없는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 답 없는 연구는 기관 고유 사업 영역이다. 연구자는 과제중심제도(PBS) 과제에도 참여할 수 있다. 연구 노하우가 풍부한 중견 연구자가 많이 신청했다.

-평가 제도도 손질했는데.

▲기존 5단계(S~D) 평가 등급을 3단계로 줄였다. 기존 S, A등급을 S로, B, C등급 B로 두고 D등급은 유지했다. 평가 등급을 최소화해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평가 개편은 연구원이 직접 수립했다.

조직 측면에서는 이종 학문 간 조화를 위해 매트릭스 조직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필요한 연구 주제가 있으면 언제든 자유롭게 기존의 팀을 해체하고 새롭게 팀을 구성해 발빠르게 연구에 착수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구조가 만들어진다.

-기존 평가 제도의 문제는 무엇인가.

▲2000년도 초반부터 출연연이 논문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논문이 평가의 핵심이 됐다. 이후 현장 상황에 맞게 평가 제도를 계속 바꿔나갔지만 관성이 남아 있다. 연구자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정량평가를 도입했는 데 이 또한 정답은 아니다.

연구자가 융합 분야에서 도전적 연구에 두려움 없이 나서기 위해선 현재의 정량평가 체계가 맞지 않는 옷과 같다는게 지론이다. 논문, 특허, 기술료 등 정량지표에 대해 점수를 쌓아올리는 방식의 평가 체계에서는 단기 실적을 쌓는 데 치중한다. 연구자의 잘못이 아니라, 제도가 연구자를 그렇게 유도한다. 대형·장기 연구에 몰입하는 것을 시스템이 방해하는 셈이다.

정량평가의 폐단 해소는 오래전부터 과학기술계의 숙원이다. 많은 사람이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대안을 찾기도 어려웠다. 적어도 KIST에서는 더 이상 정량평가 방식을 고집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KIST는 개인맞춤형 정성평가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원장에 지원할 때부터 강조한 게 있다. 논문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 물론 있지만 최대한 맞춤형 평가를 하겠다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AI 로봇 연구소의 성과는 논문보다 기술 이전이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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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 연구와 더불어 상용기술 개발, 기술 사업화 등에도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는데.

▲연구원에서 개발한 기술이 기업에서 사업화가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구심이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연료전지 촉매 기술을 한 기업에 이전했는데, 기업 연구소가 KIST로 들어와 상용화 협력도 이어갔다.

이게 링킹랩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현재 3개의 링킹랩을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기술 이전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상용화, 사업화까지 kIST가 지원한다. 기업이 데스밸리를 넘을 수 있도록 KIST가 지원한다.

-창업 아카데미도 높은 호응을 얻었다.

▲홍릉강소특구사업단과 특구를 바이오창업 클러스터로 육성하기 위해 마련한 창업학교(GRaND-K) 프로그램에 133개 팀이 지원했다. KIST에서 23개팀, 고려대 15개, 경희대 14개, 기타 90개팀이 지원했다. 창업 분야는 바이오 분야가 29개, 비 바이오 분야 93개다. 선발 과정에 오디션 방식을 도입했는데 기술창업을 희망하는 예비창업자 또는 3년 이내 초기창업자를 대상으로 공통창업교육을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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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 KIST 원장은...

윤석진 원장은 연구와 연구행정에 능통한 팔방미인으로 통한다. KIST 혁신을 주도하면서 내부 구성원에게 소위 '말빨'이 먹힌 것도 연구 및 행정 현장에서 쌓은 자신만의 경험과 철학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윤 원장은 탁월한 연구 성과를 자랑한다. 2000년대 초 이룬 직선 운동 모터 국산화는 지금도 연구개발(R&D)·사업화의 롤모델로 꼽힌다.

당시 정보통신기술(ICT) 화두는 초소형 모터 개발이었다. 소비전력이 적고 직선운동이 가능한 지름 3㎜ 이하 제품 개발에 세계가 앞다퉈 경쟁했다.

윤 원장은 작고 직선으로 움직이는 개당 1달러 이하로 모터를 개발했다. 압전초음파 소자와 삼각형 형태의 전기를 공급하는 회로를 개발, 세계 최초로 3㎜ 이하, 초저가의 직선운동 모터(리니어모터)를 만들어 냈다. 핵심 기술인 모터의 직선운동 구현은 관성의 법칙을 응용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어느날 급제동한 버스에서 영감을 얻었다. 어떻게 하면 모터의 직선 운동을 구현할수 있을까에만 골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미국 라이트가 16개의 초소형 렌즈(L16)를 조합해 무겁고 비싼 DSLR(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를 대체할 수 있는 신개념 카메라를 선보였다. 윤 원장이 개발한 모터가 탑재됐다. 윤 원장이 개발한 산화물 압전 소재는 연간 500억원 이상의 수입 대체효과를 거뒀다. 자동차 노킹(꿀렁거림) 센서 기술을 산업체에 이전해 연간 200억원 이상의 기업 매출 신장을 유도했다.

성공한 연구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던 윤 원장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파견 당시, 행정에 있어서도 남다른 감각을 드러냈다.

융합본부장으로서 연 100억원 규모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융합연구단 10개, 연구비 규모가 연 20억원 내외인 창의형 융합연구과제 20개를 선정해 융합연구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앞장섰다.

이후 KIST로 돌아와 부원장을 거쳐 지난해 25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국내에서 학사부터 박사학위 과정을 모두 이수한 '토종 과학자'이자 비(非)서울대 출신으로 처음 원장에 올라 화제가 됐다.

약력

△1959년생 △연세대 전기공학과(학사)·전기재료(석사)·전기공학(박사) △펜실베니아 주립대 박사후 연구과정 △KIST 박막재료연구센터장·재료·소자본부장·미래융합기술연구본부장·연구기획조정본부장·부원장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융합연구본부장 △한국전기전자재료학회장 △한국센서학회장 △홍릉클러스터링 추진위원회 위원장 △국가기술수준평가 위원회 위원장

정리=최호기자 snoop@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