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핫이슈]눈 속에서 되살아나는 불 '좀비 화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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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부두교 신앙에서 비롯돼 각종 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좀비'는 공포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 있다. 무서운 외모와 공격적인 행태, 짙게 드리워진 죽음의 이미지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되살아난 존재라는 불합리성이 근원적 공포를 선사한다. 좀비는 이미 스러진 것은 다시 활동할 수 없다는 자연의 이치에 위배된다.

이런 불합리한 존재가 또 있다. 더군다나 이것은 허구인 좀비와 달리 실제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지구 북반구에서 나타나는 '좀비 화재(Zombie Fires)'가 그 주인공이다.

산데르 베라베르베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 지구과학과 교수 등 국제 연구팀이 추운 고위도 지역의 화재를 연구해 최근 네이처에 좀비 화재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좀비 화재는 이름 그대로 죽지 않고 되살아나는 불길이다. 큰 화재가 있던 이듬해 같거나 가까운 자리에 다시 화재가 발생하는 것이다. 얼어붙은 땅인 북극권에서 이런 모습이 관찰됐다. 미국 알래스카, 캐나다 북부, 시베리아 등지에서다. 물론 이곳이라고 화재가 없지 않다. 사람의 실화, 번개 발생으로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러나 겨울 동안 눈 밑 땅속에 웅크려 있다가 다시 일어나 확산하는 불이라면 충분히 이상하다 여길 수 있다. 봄이 돼 눈이 녹으면 큰불로 번지기도 하는데, 아예 겨울 동안 눈 밑에서 연기를 뿜어내기도 한다.

땅속 '토탄'이 좀비 화재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석탄화 과정 초입에 위치한 것이 토탄이다. 이후 단계 석탄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건조 후에는 충분히 연료로도 이용할 수 있다. 한 번 발화하면 아주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연소되는 특징이 있다.

북극권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을 때 불씨가 이런 토탄층으로 파고들고, 겨울 동안 토탄을 연료 삼아 버티는 것이다. 봄이 돼 기온이 오르고 토양이 건조해지면 불씨는 몸집을 키워 부활해 주변을 태운다.

땅 위를 뒤덮은 눈은 불을 꺼뜨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불씨를 보호한다. 열을 차단하는 절연체로서 작용한다고 한다. 북반구 넓은 지역에 걸쳐 사는 이누이트족이 눈으로 만든 집인 이글루에서 추위를 피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러 주변 환경 여건이 좀비 화재의 불씨가 죽지 않도록 보호하는 셈이다.

이렇게 부활한 불은 보통 발생하는 것보다 이른 시기에 대형 화재로 이어진다. 통상 5~6월 번개로 인한 화재가 빈발하는데, 좀비 화재는 4월 무렵부터 생긴다.

좀비 화재는 꾸준히 발생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데 근래 들어 더욱 심해졌다. 툰드라 습지나 습지와 같이 화재 위험성이 적은 내화성 지역에서도 사례가 나오고 있다. 베라베르베케 교수 등이 참여한 연구팀은 좀비 화재가 북반구 화재 전체 3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기후변화의 영향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극권의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이 지역 기온이 오르고 좀비 화재도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 강 수위 하락도 영향을 끼친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후변화를 멈출 수 없다면 좀비 화재 역시 해를 거듭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