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CBDC 사업자 경쟁, '협력사 기술 역량'이 성패 갈랐다

최종사업자 '그라운드X' 협력사 카카오페이·카뱅
오프라인 결제·디지털 특화 높은 평가
미 컨센시스, 블록체인 플랫폼 '쿼럼' 보유
해외 결제·송금 등 호환성 경험 주효 분석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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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모의실험 연구사업에서 주사업자뿐만 아니라 연합 진영으로 참여한 협력사들의 기술평가가 성패를 가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컨소시엄 형태의 공동계약 입찰을 금지했지만 협력사와 자문사로 참여한 기업들의 역량이 주사업자가 갖지 못했거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고 있어 사실상 평가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 CBDC 모의실험 연구사업 최종사업자로 선정된 그라운드X는 디지털화폐 제조·발행·수납·유통·환수에 이르는 전체 CBDC 기본 구조에 더해 오프라인 결제·송금 기능까지 구현하려는 사업 목표에 가장 가까운 방안을 제시했다.

이번 사업에서 그라운드X를 주축으로 미국 컨센시스가 블록체인 기술과 플랫폼 개발에 참여한다. 카카오뱅크가 CBDC 수납, 카카오페이가 CBDC 유통을 각각 담당한다.

카카오페이의 경우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결제·송금 서비스가 활성화된 점을 높게 평가받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카카오페이 가입자는 3600만명이다. 모바일금융 플랫폼 중 가장 높은 수준인 2100만명(2021년 5월 기준) 월간활성사용자(MAU)를 기록했다. 경쟁 진영인 네이버파이낸셜이 온라인 간편결제에 특화됐지만 상대적으로 오프라인 결제에서는 후발주자인 점을 감안하면 카카오페이가 유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CBDC 수납·보관 기능은 그라운드X 진영이 카카오뱅크를, 라인플러스 진영이 다수 시중은행을 전략적으로 택했다. 시중은행은 전통적으로 화폐 수납 기능을 오랫동안 수행했고 개별적으로 CBDC 플랫폼을 연구개발하며 시장 변화에 대응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업에서는 새로운 디지털화폐 시장 환경을 고려해 디지털에 좀 더 특화한 인터넷전문은행이 더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뱅크 MAU는 1335만명으로 스타뱅킹(국민은행) 800만, 쏠(신한은행) 748만명 등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핵심 협력사로 이름을 올린 미국 컨센시스도 높은 기술평가를 받는데 상당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블록체인 스타트업 컨센시스는 JP모건이 개발한 이더리움 기반 블록체인 플랫폼 쿼럼(Quorum)을 지난해 인수했다. JP모건은 파생상품과 해외결제 등을 처리하는 블록체인 플랫폼 쿼럼을 개발하고 가상자산인 JPM코인을 자체 발행해 운영했다. 컨센시스가 쿼럼을 인수했고 JP모건은 컨센시스에 전략적 투자를 했다. 구체 투자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업계는 컨센시스가 보유한 쿼럼 플랫폼과 다수 해외 CBDC 사업 경험에 주목했다. 쿼럼이 호환성이 높은 기술 특성이 있어 추후 해외 결제·송금 등에서 다른 나라 플랫폼과 호환돼야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컨센시스가 싱가포르, 호주, 태국 등 해외 국가 CBDC 사업에 참여한 경험도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JP모건이 국내 은행들에 쿼럼 플랫폼의 기술력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쳤다”며 “호환성과 범용성이 중요한 CBDC 특성을 충족하는데 컨센시스가 그라운드X 진영에 큰 힘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행은 내달 26일부터 내년 6월까지 10개월 동안 CBDC 모의실험 연구를 위한 플랫폼 구축 등을 수행한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