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났습니다]이병호 서울대 공대 학장 "사회에 기여하는 공대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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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호 서울대 공대 학장,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이병호 서울대 공대 학장,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이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

이병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9월 1일 제30대 서울대 공대 학장에 취임했다. 이 학장은 '사회적 책임'을 일성으로 내걸었다.

이 학장은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먼저 서울대 공대 내부 문제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서울대 공대가 현재 잘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자리를 통해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그가 이전부터 구상해 온 '대(大)토론회' 개최 배경이다.

이 학장은 취임 직후인 2~3일 서울대 공대 내부 구성원과 외부 공학계 리더가 참여하는 '대(大)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2일에는 부·조교수, 직원, 학부생, 대학원생 4그룹으로 나눠 학장단과 비공개 토론회를 진행했다. 서울대 공대 현황에 대한 구성원 인식을 공유하고 개선 사항을 나누는 심층토론 장이다. 사전 설문조사로 의견수렴 과정도 가졌다.

3일에는 최기영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천정훈 MIT 교수 등 다양한 리더들로부터 '공대에 바라다'는 주제로 조언과 쓴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코로나19로 참석이 어려운 공학계 및 산업계 리더들은 온라인 영상으로 참여한다.

이 학장은 “서울대가 열심히 했지만 한편으로 안주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그동안의 시야에서 벗어나 보다 높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고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행력'만큼은 자신있다는 이 학장의 서울대 공대 발전 방향을 들어봤다.

이병호 서울대 공대 학장(왼쪽)과 김원석 정치정책부 부장,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이병호 서울대 공대 학장(왼쪽)과 김원석 정치정책부 부장,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대담=김원석 정치정책부 부장

-서울대 공대 학장에 취임하면서 특별한 결심 같은 것이 있었다면.

▲서울대 공대 교수님들 모두 그동안 열심히 연구하고 우수한 인재를 많이 길러내셨다. 한편으로 4차 산업혁명, 신재생에너지, 탄소중립 등 급격히 변화하는 세계적 흐름과 코로나19로 가속화된 교육방법 변화 속에 새로운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소통하고 융합하고 체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수님들이 개별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소통과 융합 연구로 시너지를 내고 발빠른 변화를 하는 데 내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많은 분들이 미래 공대에 나아갈 방향에 대해 비전을 말하지만, 나는 그것을 정말 실행해봐야겠다. 실행력이 중요하고, 내가 잘 하는 일이라는 판단이 섰다.

-시너지를 낸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소통을 통해 학과 간 장벽도 낮추고 교수 간 협력을 통해 연구와 교육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그런 움직임은 시작했다. 공대에서도 재료공학부 교수님 두 분과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님 두 분이 상대학과 겸무교수로 같이 연구도 하고 교육도 하신다. 이런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한다.

대학에서 학과 간 장벽을 낮추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대 공대에도 12개 학과에 공학전문대학원까지 있다. 학과를 유행 트렌드만 좇아 만들 수 없다. 공대는 기술, 공학 모든 분야에서 핵심 인재를 길러내야 할 기능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뜬다고 전기·전자공학 인재만, 또는 인공지능(AI)이 필요하다고 컴퓨터공학 인재만 키울 수는 없다. 물론 시대적 흐름에 맞춰 강화할 필요는 있다.

차국헌 전 공대 학장님이 추진해서 오는 2023년부터 시행하는 무학과 제도가 대표적이다.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은 광역모집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포스텍이 현재 무학과 방식으로 신입생을 모집한다. 서울대 공대는 기본적으로 학과별로 입학해 정원이 정해져있다. 2023년부터 시범적으로 광역모집이 도입되면 서울대 공대 5개 학과가 참여해 40여명 규모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학생들은 학과를 지정하지 않고 들어와 1학기를 다니고 전공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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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설문조사로 들은 내부 구성원 목소리 중 기억나는 쓴소리가 있나.

▲다양하다. 학생 복지에선 실험실 공간 부족이나 학생 공간 재배치 등이 있었다. 행정 시스템에서도 불필요한 중복 일처리를 줄이자는 제안이 있었다. 행정 간소화, 전산화가 좀 더 필요하다.

외국인 교수님들 의견도 들었다. 글로벌화를 위해 영어 강의를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소위 언론에 잘 나는 연구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중요한 분야 연구를 하는 것을 장려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교수 대상 설문에서 교육, 연구, 봉사 중에 여전히 연구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일 높다. 시간 비중으로 따지자면 연구에 절반, 교육에 3분의 1을 쓰는 것이 좋겠다는 식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공대 역할이 보다 중요해졌다.

▲서울대 공대는 4차 산업혁명 핵심 연구를 선도해 갈, 창의적이며 실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AI는 핵심, 즉 'AI 코어'를 개발할 최고급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AI를 잘 이해하고 각자 전공 영역에서 AI를 활용해 지평을 열어갈 'AI플러스엑스(AI+X) 인재도 필요하다. 두 가지 방향에 별도로 특화된 교육이 요구된다.

교육이 중요하다. 현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복수전공, 부전공, 연합전공 등 학생 수가 컴퓨터공학부 자체 학생들 수보다 많다. 온라인 대형 강의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조교 지원이 큰 어려움이다. 컴퓨터 과목은 교수가 대형강의를 하더라도 조교들이 많이 붙어서 숙제를 체크하고 프로그램 어디가 잘못됐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조교 장학금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련 분야 교수 수도 증원돼야 한다.

반도체도 공정경험이 있는 인재들을 많이 키워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반도체는 대학에서 연구하는 내용이 기업체 내용과 차별화돼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그래서 대학 연구가 기업체에서 당장 관심을 갖지 않는 미래 기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 연구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박사 학위를 받고 기업체 연구원으로 들어가 연구개발 하기 위해서는 산업체에서 현재 하고 있는 연구개발 내용과 공정에 기본 경험을 알아야 한다. 이런 교육도 필요하다. 연구 수월성만 고려하면 사회가 요구하는 연구나 인재양성은 자칫 소홀해질 수 있다.

서울대 공대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연구를 선도하는 연구대학이 돼야 하고, 동시에 우리나라 산업 연구개발을 주도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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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여를 많이 생각하시는 것 같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최근 사회적 화두다. 서울대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 사회에 기여를 많이 했지만, 한편으로 국민의 사랑을 아주 많이 받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시 국민의 사랑을 받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기여, '임팩트'가 중요하다.

대학이 사회적 요청에 부응한 봉사를 다양하게 전개해야 한다. 타 대학 학생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강의 영상을 만드는 것도 그 일환이다. 혁신공유대학 사업이 그 예이다. 전기·정보공학부와 에너지자원공학과가 먼저 시작한다. 전기·정보공학부에서는 다음 학기에 학부장이 직접 '생활 속의 반도체'라는 과목을 강의할 예정이다. 사업에 참여하는 타 대학 학생이 들을 수 있다.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대학도 들을 수 있고, 온라인으로 공유할 수 있는 강좌를 많이 만들려고 한다. 과학관과 협력해 초·중·고 학생들을 위해 캠프를 개최하는 것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고려하고 있다.

-공대는 산·학·연 협력도 활발하다.

▲지금까지는 대기업, 전기·전자·컴퓨터 이런 분야에 산·학·연 협력이 치중된 면이 있다. 앞으로 중소기업, 에너지 분야로 확대시키려 한다. 이미 서울대 공대 산하 SNU공학컨설팅센터가 중소기업 기술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SNU공학컨설팅센터는 2014년 3월에 개소한 대학 최초 산학협력 전문기관이다. 서울대 공대 문턱을 낮추기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누적 1770여건의 기술 수요를 분석했다. 기술 수요 분석 결과 필요하다면 상담을 하고, 공대 교수와 매칭을 통한 기업 애로사항 해결도 해준다. 기술 수요 중 20%가 공동 연구개발이나 장기 컨설팅 과제로 확대됐다. 명예교수님들을 통한 컨설팅이나 그룹 과제 해결 사례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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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공대에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같은 창업가가 계속 배출되길 바라는 기대도 크다.

▲THE(Times Higher Education) 2017년 자료 기준, 서울대는 글로벌 선도 최고경영자(CEO)를 배출한 대학으로 세계 21위이다. 많은 산업계 리더와 혁신가를 양성했다. 현재도 교수 창업이 많이 이뤄지고, 성공사례도 나왔다. 권성훈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의 퀀타매트릭스, 이정훈 기계공학부 교수의 텔로팜이 대표적이다. AI 관련 교수 창업도 활발하다.

대학 차원에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SNU공학컨설팅센터, 해동아이디어팩토리, SNU기술창업플라자(공존34), 신기술창업네트워크를 갖췄다. 최근에는 SNU공학기술 유니콘 발굴 투자조합을 만들었고, 이를 확대할 계획이다.

매년 '창의설계 축전'을 운영하는데, 올해에도 60개 팀이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앞으로 학생들의 '창업 휴학'이 실제로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학부생 창업도 장려하겠지만, 전문화된 전공지식을 바탕으로 한 대학원연구실 창업을 더욱 장려할 생각이다. 전자가 레드오션이라면 후자는 블루오션이다.

다만 대학원에서 연구한 기술을 갖고 창업하는 것이 모두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이 되길 목표로 하고 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학원 연구를 바탕으로 한 창업은 연구결과를 사회 또는 산업에 접목시켜 실용화한다는 데 뜻을 우선 둬야 한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를 측정하는 고정형 정밀 장치 기술로 창업해 그 벤처를 성공시킨다고 해도 그러한 B2B 사업은 네이버와 같은 B2C처럼 성공하기는 어렵다. 연구한 기술을 실제 이용해 사회에 기여하는 데서 큰 보람을 찾겠다는 것이 우선 목표가 되는 것이 좋다.

-대학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는데 규제나 현실적 애로사항이 있다면.

▲학생 정원 문제는 수도권 규제 정책에 묶여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대학이 어려움을 겪는 현실과 컴퓨터 분야 등에선 인재 공급 부족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특히 반도체 공정·설계 분야 인재가 많이 부족한데, 보다 많은 학생을 선발해 양성할 수 있는 길을 정부가 열어주길 바란다.

민감한 문제지만 석·박사 과정 학생들의 병역특례 축소 움직임도 우려스럽다. 실제로 축소가 본격화되면 과학기술특성화대학 입장에선 심각한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점점 병역특례 대상 숫자가 줄어들면서 아예 학생들이 포기하고 병역을 마친 뒤 우수 인재는 유학을 가버린다. 국내에 우수 인재가 남지 않는다. 중소기업 전문연구요원으로 의무 복무하는 제도도 학생들이 점점 더 선호하지 않아 이런 것도 국내에서 석박사급 핵심 인재 양성에 어려움을 겪게 하는 요인이 된다.

-서울대 공대 발전을 기대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회에 기여하고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기관이 되도록 바꿔가겠다. 우리나라 산업이 아주 잘 발전해 왔는데 또 새로 도약해야 되는 단계에 와 있다. 잘못하면 정체되거나 후퇴할 수도 있는, 중요한 시점이라는 각오로 일하겠다.

[데스크가 만났습니다]이병호 서울대 공대 학장 "사회에 기여하는 공대 돼야"

○…이병호 서울대 공대 신임 학장은

이병호 학장은 1983년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해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마치고 캘리포니아버클리대에서 전기공학과컴퓨터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 국제광공학회(SPIE), 미국광학회(OSA),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 4개 국제학술단체 석학회원(Fellow)이며, 한국공학한림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이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석학이다. 한국광학회 회장,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학술연구와 산업계 교류에도 활발하다.

정리=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