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고위험 작업 대체 로봇 적용 확대해야

중대재해처벌법 27일 시행...책임자 처벌보다 근로자 안전을 위한 법
관련 업계, 공동주택 대상 사업자 선정 기준에 안전 항목 넣어야 주장

이달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 시행된다. 해당 법안은 산업 현장에서 중대 재해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보건관리 체계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 법인은 5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는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안전사고가 잦은 건설업계는 일찍이 준비에 나섰다. 안전 관리 조직을 재정비하고 안전 관련 전담 인력을 채용해 현장에 투입시켰고, 드론과 스마트 CCTV, 현장 안전감시 시스템 등 다양한 스마트 건설 기술을 도입해 중대재해 예방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전진우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정책기획실장
전진우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정책기획실장

이러한 대응책과 예방책들이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산업재해를 줄일 수는 있지만 재해 자체를 막기는 어렵다. 건설산업은 숙련공에 많이 의존하는 대표적인 노동집약산업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예기치 못한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사고가 나면 인명사고로 이어진다.

지난해 인천 미추홀구에서는 굴착기에서 떨어진 낙석에 맞은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안전관리자 2명이 배치돼 있었고, 안전수칙 교육도 이뤄졌으며, 근로자가 안전장비도 모두 착용했지만 안타까운 사망사고는 막을 수 없었다. 안전교육과 시스템 마련을 넘어 근로자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좀 더 확실한 대안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고위험 작업을 대신할 수 있는 로봇이 그 대안이다. 로봇을 현장에 투입하면 근로자는 현장 밖에서 스마트 기기를 통해 로봇을 원격제어하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해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현재 국내 현장에 적용되고 있거나 적용 예정인 고위험 작업 대체 로봇은 다양하다. 무거운 패널을 설치하는 로봇, 드릴로 타공하는 로봇, 밀폐된 공간에서 방수 페인트를 칠하는 로봇, 건물 외벽과 유리창을 청소하는 로봇 등이 극한 작업환경에 도입돼 있다.

실제로 국내 기술로 개발된 건축 도장로봇은 근로자가 고층 건물 외벽에 매달리는 대신 로봇이 외벽을 타면서 도장 작업을 진행한다. 주로 아파트 도장·재도장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지난 2019년에는 세계 최초로 102m에 달하는 화력발전소 연돌 도장공사에 투입돼 단 20일 만에 무사고로 도장작업을 완료했다고 한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발간한 '스마트 건설을 선도하는 건설로봇 동향' 보고서(KIR 2021-1)에 따르면 최근 건설산업은 노동 인력의 고령화, 숙련 인력의 감소, 낮은 생산성, 높은 산업재해 등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보수적인 건설산업의 경쟁력 확보와 혁신 성장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전경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전경

이런 상황에서 로봇이야 말로 건설산업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로봇은 인력으로 한계가 있었던 영역을 보완하고 개선할 수 있다. 특히 고위험 작업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은 기존에 건설 현장에 도입됐던 스마트 건설 기술들이 비용절감·생산성 증대 등에 주력하던 것에 더해 근로자 안전까지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어 더욱 스마트하고 효율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더불어 고위험 작업 대체 로봇이 좀 더 널리 현장에 도입되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사후적 대책보다 근로자의 안전을 더욱 보장할 수 있는 사전적 안전 저감 대책도 강화될 필요가 있다. 건설 분야에서 대표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사례가 '공동주택 대상 사업자 선정 기준'이다. 국토부는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에 관한 지침을 '공동주택 적격심사제 표준평가표'로 규정하고 있는데 기업신뢰도 30점, 업무수행능력 30점, 사업제안 10점, 입찰가격 30점이 각각 배점으로 할당돼 있지만 안전에 대한 항목은 빠져 있다.

적격심사 표준평가표에 '안전'에 대한 평가 항목이 없다 보니 영세 사업자 입장에서 수주에 유리한 '최저 가격'에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저가로 사업을 수주한 업체들은 저가의 비용에 맞추기 위해 근로자의 안전한 환경 조성 비용뿐만 아니라 고위험 작업 대체 로봇 등 스마트 안전기술 적용 비용을 굳이 지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더라도 현 상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동주택 적격심사제 표준평가표'에 높은 배점의 안전 항목 추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관련업계 주장이다. 기업신뢰도와 업무수행능력과 같은 항목의 배점 수준으로 강조되어야 현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의미 있는 모멘텀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사업자와 경영 책임자를 벌하기 위해 마련된 법이 아니라 근로자 안전을 보장하는데 방점을 찍은 법안인 만큼 선제적 관점에서 고위험 작업 대체 로봇 등 스마트 안전기술이 더 널리 적용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다각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진우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정책기획실장(숭실대 안전융합대학원 겸임교수) jzinu@Kir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