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빅브라더의 역설

'빅브라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한 용어로, 모든 정보를 수집 관리하며 사회와 개인 전반을 통제하는 체제를 일컫는다. 흔히 고도화된 기술이 가져올 부정적인 미래상으로 언급된다. 개인의 행동과 대화는 물론 사생활까지 수많은 카메라와 위성 등을 통해 감시당하며, 자유는 철저히 배격된다.

빅브라더의 전제 조건 중 하나는 기술 발전이다. 모든 행동을 관찰하고 수집한 정보를 거대 권력에 전달하기 위해선 첨단 기기들과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은 인터넷이 발달하고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빅브라더 시대도 가까워졌음을 경고하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빅브라더와는 사뭇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빅브라더가 거대 권력의 통치를 위한 기술과 정보의 독점이라면 지금 정치권에서는 수많은 국민이 정보를 상호 공유하며 사회와 권력을 견제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주변의 작은 형제들이 군림하던 큰 자들을 감시하며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녹취록이 대표적이다. 대선 양강 주자로 불리는 후보들은 녹취록 폭로에 시달리고 있다. 각 당 캠프에서 애써 준비했던 영입 인재들은 어떤가. 이들 역시 과거 부적절한 행동이 네티즌을 통해 거론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이 문제가 되면서 자진 사퇴의 길을 걸었다. 정치인, 고위관료, 유명인의 과거를 캐며 적격성을 따지는 이들을 우리는 '네티즌 수사대'라 부른다.

한때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대유행을 불러왔던 웹 2.0의 롱테일 법칙과 유사하다. 특출한 일부보다 평범한 다수의 힘과 집단지성의 가치를 중요시했던 롱테일 현상이 정치권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혹자는 이를 디지털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사진과 음성은 물론 영상까지 기록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누구나 들고 다니면서 대중이 권력, 개인이 개인을 서로 감시하는 사회가 도래했다. 콘텐츠 유통 플랫폼도 종류와 형태가 다양화되며, 제보와 공유도 손쉬워졌다. 개인이 자신이 속한 정책과 제도에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국회 입법동의청원이 대표적이다.

대중의 목소리는 커지고 행동은 적극적으로 바뀌면서 그동안 부당하다 생각했던 국가권력과 자본세력, 종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관행으로 치부됐던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안한다. 디지털 시대 발달로 인한 새로운 형태의 개인주의가 세계적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작용도 있다. 기술 발달로 기록과 유통이 쉬어진 만큼 편집도 간편해 사실을 왜곡한 이른바 '가짜뉴스' 정보가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대선판을 흔든 녹취록 사태에서도 원본 콘텐츠를 재가공해 사실관계를 왜곡한 정보가 뿌려졌다. 미래에는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가짜 영상이 특정 세력에 의해 악용될 수도 있다.

사용자제작콘텐츠(UCC)에서 시작한 개인 미디어의 가능성은 기존 권력과 사회시스템을 견제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힘은 서로를 감시하고 여론조차 조작할 수 있을 힘도 갖췄다. 그 결과가 사회 정의로 이어질지 불신의 시대를 열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어느 것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옳고 그름은 결국 당대의 여론이 결정하는 정의가 정할 것이다. 다만 디지털 기술 발전이 사회 체제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이제 사회와 대중이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에 걸맞게 도덕성과 분별력을 갖춰야 한다.

[ET시선]빅브라더의 역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