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디지털 전환을 바라는 C레벨에게

[ET시론]디지털 전환을 바라는 C레벨에게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디지털 전환 투자 추이향후 2년간 디지털 전황을 위해 가장 집중 투자할 분야는?디지털 전환(DT:Digital Transformation)이 기업의 최대 화두다. 얼마 전까지 디지털 전환은 기업 미래전략의 상위 현안 중 하나 정도로 겨우 여겨졌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 과제로 올라섰다. 새 정부도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구축하고,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디지털 전환 필요성이나 세계 흐름은 누구나 공감한다. 다만 우리 회사의 구체적 실천을 위한 세부 전략을 놓고 최고경영자(CEO)나 최고정보책임자(CIO)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우리는 1980년대부터 전산화, 정보화, 업무 재설계(BPR), 빅데이터 등 정보기술(IT) 변화를 겪어 왔으며,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잘 대응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이룩한 공급사슬 최적화는 각자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올라 호령할 수 있는 기반이 됐으며, 디지털·모바일 뱅킹, 전자정부 같은 분야에서도 대한민국은 세계 선두에서 질주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태풍은 기존 IT 변화와 무엇이 같고 다를까. 차이와 공통점을 정확하게 따져보라. 그러면 디지털 전환의 성공률을 확실히 높일 수 있다.

[ET시론]디지털 전환을 바라는 C레벨에게

세 가지 차이를 꼽아보자. 첫 번째로 디지털 전환은 전방위적이다. 한 가지 영역과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분야에 걸쳐 디지털화가 가능하며 이에 따른 혁신과 확장 기회도 전방위적이다. 일상을 둘러보면 어느 곳이나 전산시스템이 동원되지 않은 데가 없다. 은행, 편의점, 학교, 주민센터, 배달주문, 택시 등 모두 전산화돼 운영되면서 데이터를 쏟아내고 있으며, 휴대폰과 SNS까지 합치면 개인의 행동 하나하나가 데이터화 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의 여건이 무르익지 않은 산업 분야를 찾아보기 힘들다.

개별 회사 차원에서 보아도 어느 한 부서, 어느 특정 비즈니스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생산, 물류, 유통, 마케팅, 고객경험 모두가 컴퓨터 없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다. 고객 경험부터 백오피스(Back Office)의 운영 효율화부터 신규 서비스 출시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전환을 통한 혁신의 기회는 모든 곳에 숨어있다.

두 번째는 AI의 유무다. 기존 IT혁신 장점은 업무 전산화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활용한 업무 효율화 및 최적화에 있었다. 디지털 전환은 그것을 모두 아우르면서도 AI에 의한 혁신을 핵심 속성으로 품고 있다. AI를 활용하면 사람의 판단이 개입돼야 하는 프로세스 자동화를 이룰 수 있다. 미국 FDA에서는 2019년 이후에만 AI·머신러닝(ML) 기술을 탑재한 의료기기 270여개를 이미 승인했는데, 대부분 의료영상 판독이나 심장 모니터링 자동화 기기다.

AI는 또한 고객 접점에서 신기한 기능을 제공하기도 한다. 사람 말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챗봇은 이미 여러 분야에서 고객 응대에 활용되고 있다.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기술을 이용한 가상착장(의류)이나 가상건축 시각화 기능들이 하나둘씩 출시되고 있다. 미국 화장품 브랜드 세포라는 스마트폰 화면에 고객 얼굴을 비치면 다양한 화장품을 즉시 적용시켜 보여주는 메이크업 얼굴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의 호평을 받고 있다.

세 번째는 회사를 완전히 탈바꿈할 잠재력이다. '전환'이란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꾼다는 뜻인 만큼, 데이터와 SW가 사업운영에 있어서 주변 인물이 아니라 중심 인물이 되는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기업 자산과 운영이 디지털화되면 의사결정이 빨라지고 비즈니스 모델 실험이 용이해져 조직 체계, 사업 분야 같은 근본적 변신까지도 추구할 수 있다.

영화CD 우편 대여 서비스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사업 초기부터 온라인 주문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었으며, 인기 콘텐츠에 주문이 몰리는 것을 상쇄하기 위해 고객들이 좋아할 비인기(롱테일) 콘텐츠를 잘 골라주는 개인화 추천 시스템을 개발해 발전시켜왔다. 2000년대 후반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고 멀티미디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디오 스트리밍이 가능해졌을 때 넷플릭스는 실시간 온라인 영화 서비스 사업에 가장 준비된 회사였다. 2007년 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는 당연하게도 시장 선두를 유지하는데, 이 시장은 더 이상 우편물이 하루이틀 내에 닿아야 하는 자국의 CD플레이어 소유자 대상의 제한된 시장이 아니라 세계에 인터넷에 연결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된 것이다. 체질이 디지털화돼 있을 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새로운 시장으로의 변환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는 대표 사례다.

그렇다면, 기존 IT 변화와 디지털 전환의 공통점에서 DT 전략을 생각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과제라는 점이다. 너무 어렵고 먼 얘기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꼼꼼하게 하나씩 풀어보면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어려움이 있을 뿐이다. 이 점을 믿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50% 이상의 IT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난다. 그렇지만 이건 반대로 프로젝트의 절반 가까이가 성공한다는 의미다. 성공한 프로젝트 노하우를 디지털 전환 실행에 잘 적용하면 된다. 유행어나 유행하는 기술에 현혹되지 말고 뚜렷한 비즈니스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점, 과제 수행을 위한 수평적 협력 체계 구축이 성공의 관건이라는 점, 기술은 전체 프로젝트의 아주 일부일 뿐이라는 점 등 기존 IT 프로젝트 노하우가 그대로 적용된다.

특히 디지털 전환과 같이 광범위한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 명심해야 할 금언이 있다. '크게 계획하되 작게 시작하라'라는 말이다. '크게 계획'한다는 것은 중장기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IDC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CEO들은 디지털 전환이 어려운 이유로 기술력 부재 외에 전략 부재를 중요하게 꼽았다. 중장기 전략적 목표 없이 화려한 신기술 적용 프로젝트만 펼치는 방식으로는 디지털 전환이 성공하기 어렵고, 혹시 프로젝트들이 성공하더라도 그런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몇개 기능이나 응용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플랫폼이란 다양한 참여자가 서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하는 장을 뜻하며, 디지털 플랫폼이란 데이터, AI 모델, SW 모듈이라는 참여자들이 쉽게 연계, 조합돼 다양한 기능과 서비스가 구현될 수 있는 기반이다. 디지털 플랫폼은 우리 회사 체질을 유연화해 새로운 시도와 조정이 쉽게 적용될 수 있도록 해줘 변화와 발전의 지속성을 담보해줄 것이다.

AI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 하나를 개발할 때도 플랫폼 개념을 적용하자.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여 필요한 서비스를 개발해서 개통하는 데에서 그친다면 초보적인 성능밖에는 기대할 수 없다. AI 장점은 학습능력이 있다는 것이므로, 개통한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고객 행동 데이터가 쌓이고 모아지면 그를 토대로 추가 학습이 이루어져 성능이 개선될 수 있는 데이터-AI-고객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러한 체계는 사내외 다른 서비스와도 연계될 수 있는 확장성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작게 시작'한다는 것은 선택과 집중, 순서짓기다. 최근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실린 한 논문에서 '성공적 디지털 전환을 위한 4개의 기둥'을 제시했는데, 디지털 전환의 영역(기둥)을 IT 개선, 운영의 디지털화, 디지털 마케팅 그리고 신기술 기반의 벤처(신사업)로 나눠서 다루자는 것이다. 우리 회사의 상황과 전략적 목표에 따라 우선 집중해야 할 영역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모든 영역을 전방위적으로 노린다는 건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또 한 가지 시작단계에서 중요한 과제는 초기 성공사례 만들기다. 6개월 정도 기간에 사업적으로 의미 있는 실질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가령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마케팅 프로젝트를 기획해 볼 수 있다. 우리 데이터 중심의 고객 세그멘테이션이 소셜 미디어상에서 유효한지 검증해볼 수 있으며, 캠페인 결과를 즉시 피드백 받아 바로 조정해 대처하는 민첩성 효과도 경험할 수 있다.

온라인 유통사의 경우 전체 사이트 개편에 앞서 특정 페이지의 특정 영역에 AI 추천 기술을 적용해 상품을 노출시켜 실질적인 구매전환율 상승을 이끌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실지로 국내 식품업체 C사의 경우 자사몰의 몇개 영역에 AI가 고객 개인별로 추천하는 상품을 전시함으로써 구매전환율 상승을 확인했고, 그 경험을 토대로 다른 영역에서 AI 활용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온라인화 가속 시대에 살고 있다. 아무리 오프라인 비즈니스 성격이 짙은 회사라도 고객, 공급망, 생산과정에서 온라인 접점이 없을 수 없고 계속 확대되는 상황이어서, 이제 디지털 전환은 거부할 수 없는 과제다. 어려워하며 우왕좌왕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차근차근 대응하자. 얼마든지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뤄 우리 회사의 체질을 바꾸고 디지털 시대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구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 sglee@snu.ac.kr

<필자 소개>

이상구 교수는 빅데이터와 AI 접점의 연구를 수행하면서 자연어처리, 이미지 인식, 개인화 추천 기술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기술의 산업화에 관심이 많아 서울대 정보화본부장, e비즈니스 연구센터장 등을 역임했으며, AI 분야 연구실 벤처(인텔리시스)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