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자동차산업, 'MESS, Mess, Mes'

금융위기·디젤게이트·사드 등 글로벌 악재 대응 갈팡질팡
코로나19 공급망 타격 겹쳐 중소 부품업체 자포자기 상황
고물가 등 수요 위축 경고등, 대규모 정책지원 한계 직면
정부가 구조개편 주도하고 선택 지원으로 낙수효과 유도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미국 친환경 자동차 인력 현황신차 판매 전기차 비중

자동차산업은 1980년대 중반 들어와 3저 현상에 힘입어 성장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대대적 구조조정을 치렀지만 단기간에 위기를 극복하고 2차 성장기에 진입했다. 2000년대 말에 불어닥친 세계 금융위기는 자동차산업을 절체절명의 위기 상태로 내몰 수 있었으나 위기를 기회로 전환, 3차 성장기에 진입한 듯 보였다.

그러나 국내 자동차 생산이 2011년에 정점을 찍은 후 갈지자를 걷다가 2015년 이후 하향세로 접어든 결과 지난 10년간 120만대가 감소했다. 국내 완성차업체의 판매 부진도 있었지만 외국계 완성차 3사의 경영 위기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ET시론]자동차산업, 'MESS, Mess, Mes'

◇산으로 간 전기동력차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산업이 구조조정에 빠지자 중국 사업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2016년 국내 완성차업체의 중국 시장 판매가 내수시장 판매를 상회했다. 일각에서는 우리 자동차산업이 세계 미래차 산업을 주도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내놓았다. 그런데 2015년 디젤게이트와 2016년 4차 산업혁명 논의에 이어 2017년 사드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우리나라와 유럽에서 친환경차의 대명사로 불리던 클린 디젤차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정부 육성 정책에도 전기동력차는 클린 디젤차에 밀려 찾기도 어려웠다. 중국 시장 판매는 추풍낙엽 신세로 전락했다. 클린 디젤차 개발과 상용화에 사활을 걸면서 중국 시장에 의존했던 국내 자동차 업계에는 큰 충격이었다.

2017년 세계 신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전기차 비중이 1%를 넘어서자 자동차 업체는 경쟁적으로 미래차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반응은 시큰둥했다. 전기차 3형제인 배터리 전기차(B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수소전기차(FCEV)의 2017년 총판매가 1만3540대로 신차 판매의 0.76%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기차 시대는 요원하고 전기차가 친환경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하면서 내연기관차 기술개발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2018년에 들어서서 미국이 전기차의 글로벌 가치사슬과 전장부품에 관심을 두게 되자 사달이 났다. 내연기관차 부품 생산에 치중한 국내 부품업계의 미래차 부품 대응이 매우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미래차 벤처기업이 우후죽순 나타났으며, 지방자치단체는 경쟁적으로 이들을 유치하려 동분서주했으나 정녕 발등의 불은 보지 못했다. 지역 중소 부품업체는 하나둘 사라져 가고 있는데 관심은 미래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전환 전략과 함께 세계 자동차 수요가 2018년부터 2년 연속 감소하면서 자동차산업 내부에서 각자도생이 강조되자 중소 부품업체는 넋을 잃었다. 부품업체는 BEV, PHEV, FCEV, 하이브리드카(HEV), 커넥티드 카, 자율주행차 등 쏟아져 나오는 정부의 육성 정책과 국내외 완성차 업체의 개발 전략을 놓고 어느 길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정부가 두 팔 걷고 나서서 부품업체의 전환 전략을 마련,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해 세계 자동차 수요가 큰 폭으로 감소하자 일부 중소 부품업체는 자포자기에 이르렀다. 내연기관차 시대가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연기관차 판매가 급감하고 전기차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2021년 세계 자동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전기차 비중은 8.6%로 증가했으나 국내 점유율은 4.8%에 그쳤다. 세계 최고 전기차 배터리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우리가 전기차 산업을 주도할 수 있다는 평가가 무색할 정도였다. 지난 1분기에도 내연기관차 판매는 작년 동기 대비 7.6%가 감소했으나 전기차 수요는 75%가 증가, 200만대를 넘어섰다.

◇사후약방문보다 예방에 힘써야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사실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내연기관차 부품사업의 수익성이 사상 최저치로 떨어지고, 미래차 부품사업에서도 아직 수익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물러가기도 전에 선진국 경제가 침체의 수렁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

올해 세계 자동차 수요는 다시 2020년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완성차 5사는 올 상반기에 국내외에서 작년 동기 대비 4.2% 감소한 368만5258대를 판매한 것으로 추산된다. 내수가 지난해 동기 대비 11.2% 감소,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1~5월 중 작년 동기 대비 3.0% 증가하던 수출은 6월 소폭 감소했으며, 상반기 해외 생산 판매도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개별소비세 인하 기간을 연장했지만 하반기로의 내수 부진은 이어질 공산이 크다. 물가와 금리가 상승하고 있어 소비자들이 상대적 고가제품인 자동차를 구매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수출 역시 중국을 제외한 세계 자동차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감소 폭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완성차업체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지난 상반기 12.4%로 상승하고 유럽 시장 점유율도 1~5월 중 7.5%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완성차 업체의 수익률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양호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이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외부감사 대상 부품업체의 수익률이 지난해 2% 아래로 떨어진 가운데 금리가 계속 오르자 중소부품업체는 더 버티기 어렵다고 아우성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동차산업이 사상 최고치의 판매를 기록한 2014년부터 '아래로부터의 위기'와 'MESS(Monitoring, Early warning, Safety net, Survival plan), Mess, Mes'의 위험성을 강조해 왔다. 중소부품업체가 무너져 공급망 불안이 가중될 수 있어 모니터링과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회적 안전망과 회생 전략(MESS)을 수립하지 않으면 엉망인 상황(Mess)으로 치달아 수술칼(Mes)을 대야 할 시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소귀에 경 읽기였다. 다행히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정부가 다양한 지원 정책을 수립해 대응함으로써 위기는 막아내고 있다. 그러나 경기침체 흐름 속에서 정부가 중소부품사에 추가 자금을 지원하기는 어렵다. 단지 빌려준 자금의 상환과 이자 지급을 유예해 줄 수는 있다. 폭탄 규모만 커질 수 있다.

566개 외부감사 부품업체를 분석해 본 결과 국내 부품업체의 어려움은 2017년부터 가중됐다. 여기에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정부가 대규모 자금을 풀어 또 부품업계를 지원했다. 미래차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부품업체 비중이 10%에도 못 미치고 있는 가운데 또다시 수요가 감소하고 있어 중소 부품업체가 연명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중소부품 업체를 우회적 수단으로 지원하면 구조조정과 구조 개편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수 있다.

코로나19가 전기차 수요를 촉발했듯이 자동차산업의 이중 침체가 2023년 하반기 이후 종료되면 자동차 업체의 미래차 전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선진국과 중국의 자동차 업체들은 2026년 '소프트웨어 기반 전기동력 커넥티드 카' 시대를 앞두고 연구개발(R&D) 투자 증대와 원가 절감을 비롯한 경영 전반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디지털화를 가속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른바 '분수효과'보다 '낙수효과'를 고려해서 부품업계를 지원해야 한다. 자동차산업에 대한 R&D 예산 지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가운데 향후 4년간 미래차 공급망을 구축하려면 선택과 집중형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또 부품업계의 미래차 인력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산업 전환에 소극적이었던 곳이 관련 인력양성 사업을 주도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지원 하부구조도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고려해 분산형보다는 집중형으로 구축해야 한다.

지원은 당분간 상향식이 아닌 하향식으로 추진해야 한다. 구조조정은 시장 기능에 맡길 수 있지만 구조 개편은 경쟁국처럼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 기존 미래차 비전과 목표를 답습하기보다는 세부 실행계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산으로 간 전기차가 다시 4차 산업혁명의 성장 가도에서 앞서 달리면서 우리 자동차산업의 성장동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항구 호서대 기계자동차공학부 조교수 hglee@katech.re.kr

이항구 호서대 기계자동차공학부 조교수(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
이항구 호서대 기계자동차공학부 조교수(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

〈필자소개〉

이항구 교수는 1987년부터 산업연구원에 근무하며 자동차산업 연구를 담당했다. 2020년부터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면서 호서대 조교수를 겸하고 있다. 친환경자동차 보급뿐만 아니라 기업 간 협업법 제정, 상생결제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 국토교통부 자율주행자동차 융복합 미래포럼 위원, 중소벤처기업부 규제 특구 자문위원, 환경부 WTO '무역과 지속가능 환경협의체'(TESSD) 대응 TF 위원, 인베스트 코리아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