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반도체 투자, 대만에 뒤진 한국

올해 세계 반도체 장비 투자액이 1000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장비 투자액이 990억달러로 지난해보다 9% 증가, 3년 연속 늘어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시설투자액은 전자산업의 향후 전망을 알려주는 가늠자 역할을 한다. 장치산업 특성상 올해 투자하더라도 가동 시점은 빨라야 1~2년 지나야 된다. 반도체 시설투자가 늘었다는 것은 1~2년 뒤 반도체 시장 전망이 밝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기자동차·가상현실(XR) 등 미래 신기술이 속속 상용화되고, 디지털 대전환이 급류를 타면서 반도체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가 침체됐지만 반도체 투자 증액이 멈추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런데 국가별 투자액을 보면 한국은 엇박자가 난다. 세계 전체 투자액은 늘었지만 한국은 거꾸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 반도체 장비 투자 전망치는 222억달러로 지난해보다 5.5%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이 지난해 대비 47% 증가한 300억달러를 투자하는 것과 대비된다. 대만은 공격적인데 한국은 보수적이다. 몇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건 산업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만이 TSMC로 대변되는 파운드리와 시스템반도체에서 강세라면 한국은 여전히 메모리반도체가 주력이다. 투자 추이를 보면 앞으로의 반도체 시장 성장을 파운드리와 시스템반도체가 이끌 것으로 가늠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각각 파운드리 및 시스템반도체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객 확보와 생태계 구축에서 TSMC에 뒤진다. 투자 규모에서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미래 고객 확보에서 뒤졌다는 의미다. 반도체 시장지배력은 생산능력과 비례한다. 투자 경쟁에서 뒤지면 미래가 없다. '포스트 메모리' 전략에 속도를 더 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