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민의 디지털 창업사] 〈5〉GE·지멘스를 제친 우리나라 벤처, 메디슨 연방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경영사학회 부회장·전자신문 명예기자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경영사학회 부회장·전자신문 명예기자

1980년대 중반, 컴퓨터 기술의 도입과 함께 대학 연구실을 중심으로 민간의 자생적 창의성이 발휘된 하이테크 벤처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혁신의 흐름 속에서 가장 독보적인 인물을 꼽자면,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 기술 벤처기업 '메디슨(Medison)'을 설립한 고(故) 이민화 회장이다.

어린 시절 이민화는 국방과학연구소(ADD)에 재직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아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됐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거쳐 KAIST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국가적 기획이었던 '초음파 진단기 개발 프로젝트'의 책임연구원을 맡아, 1984년 고해상도 초음파 진단 장비의 프로토타입 개발과 시연을 성공리에 이끌어냈다. 그러나 상업화로 나아가는 경로는 순탄치 않았다. 외산 대기업과의 경쟁이 어려운데다, 국내 대형 병원의 의료진들 역시 국산 기술을 신뢰하지 않았다.

1985년, 그는 KAIST 정문 앞 여관방에 임시 창업 준비 본부를 꾸리고 7명의 동료와 함께 자본금 5000만원으로 메디슨을 설립했다. 창업 초기엔 단가 경쟁력 확보가 용이한 중저가 보급형 시장을 우선 공략했다. 1986년 서울 녹십자병원에 납품한 것을 시작으로, 메디슨은 창업 3년 만에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선명한 실시간 영상을 만드는 독보적인 원천기술(PSDF)을 완성했다. 나아가 미국의 GE, 독일의 지멘스, 일본의 도시바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을 제치고, 1997년 세계 최초로 '3차원 실시간 초음파 진단기'를 출시하며 글로벌 프리미엄 의료기기 시장을 선도했다.

이 과정에서 메디슨은 이른바 '학술 선도 마케팅'을 추진했다. 이름 없는 한국의 벤처기업이 만든 3D 기술을 전 세계 대형 병원 의사들에게 알리기 위해, 국제 학술 교류 모임을 추진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의대 교수들에게 장비를 무료로 빌려주며 이 장비로 태아의 기형이나 질환을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지 연구해달라고 제안했다. 교수들의 연구 논문이 점차 학술지에 실리면서 메디슨의 기술력은 의학계에서 인정받게 됐다. 의사들의 신뢰를 얻어낸 메디슨은 전 세계 110여개국에 진출하며 세계 산부인과 초음파 시장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기술혁신을 통한 성공을 경험한 이민화 회장은 관료제를 타파하기 위해 벤처연방제를 제시했다. 그는 벤처기업이라도 매출 1000억원이라는 임계점에 이르면 통제를 위한 관료제적 계층 구조가 생겨나 혁신이 어려워진다고 보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과감한 사내 벤처 분사를 단행했다. 월급을 받는 노동자일 때보다 창업가일 때 수십 배 이상의 연구 몰입도와 경영 책임감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모기업 메디슨과 분사된 자회사들은 재무와 인사에서 상호 불가침적 독립성을 유지하지만, R&D·마케팅 인프라·경영 노하우는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대기업 생태계와 경쟁하는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그 과정에서 메디다스, 메디페이스 등 의료 IT 산업을 개척한 수많은 기업이 태어났다. 전체 고용 직원이 300명 안팎이던 메디슨에서 무려 100명이 넘는 벤처 CEO가 배출되었다.

1990년대 중반 우리 금융환경은 부동산 담보 없이는 기술 기업에 자금을 주지 않는 보수적인 분위기였다. 이민화 회장은 벤처기업협회를 결성해, 정부를 설득해 기술력만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코스닥 시장을 설립했고, 고급 인재들을 유치할 수 있도록 스톡옵션 등이 도입된 벤처특별법을 제정하는 데에 기여했다.

하지만, 3조원 가치에 달하던 메디슨 제국도 2002년 자회사의 어음 22억원을 막지 못해 부도라는 종말을 맞이했다. 이는 주가가 단기간에 오르면서 과도한 차입경영과 장부상 자산 착시가 낳은 함정이었다. 닷컴 버블이 꺼지자 메디슨이 보유했던 계열사 주식 가치는 증발했고, 판매 실적에만 집착한 결과 대금회수가 안되면서 현금은 고갈됐다.

비록 미완의 실패로 끝났을지언정 이민화가 남긴 기술 자립의 신념과 벤처 생태계의 유산은 오늘날 인공지능(AI)과 딥테크 혁명 시대를 헤쳐나가야 하는 창업가들에게 경영사적 교훈을 던진다. 거대 자본과 고도의 기술력이 결합해야 하는 AI·반도체 글로벌 경쟁에서도 여전히 기술 주권과 법적 제도적 장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경영사학회 부회장·전자신문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