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개혁신당 선거대책위원회는 모두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증액에 동의했다. 윤석열 정부가 R&D 예산을 일방적으로 삭감했다가 후폭풍에 몰리고, 다시 예산을 복원하는 등의 논란을 자초했던터라 예산 증액에선 이견이 없었다.
다만 구체적인 투자 전략에선 온도차를 보였다. 민주당 선대위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의 국가전략기술에 R&D 예산을 집중 투자키로 했다. 국민의힘 선대위는 국가 예산지출의 5% 이상을 R&D에 반영하는 원칙을 정립하겠다고 밝혔다. 개혁신당 선대위는 정권에 흔들리지 않는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하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황정아 민주당 선대위 과학기술혁신위원장은 “과학기술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라며 “민주당은 과학기술을 국정의 중심에 놓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건 예산이다. '안정'적이고 '안전'한, '장기'적 R&D 예산을 대폭 확대하겠다”며 “AI,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백신, 수소, 미래차 등 미래 국가 전략기술 분야를 확실히 키우겠다. AI부터 바이오, 콘텐츠, 국방, 우주항공, 에너지, 제조까지, 첨단산업 전반에 걸쳐 적극 투자하겠다”고 부연했다.
또 “진짜 과학기술로 진짜 성장을 만들어야 할 때”라면서 “민주당은 그 중심에 사람을 놓겠다. 연구자들이 자율성을 갖고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 관료조직이 주도하는 기존 R&D 시스템을 바꾸고, 현장 중심의 새로운 판을 짜겠다”고 덧붙였다.
최형두 국민의힘 선대위 부위원장 겸 G3 도약 AI과학본부장은 “R&D는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국가의 총지식을 유지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투자”라면서 “재정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R&D는 정부 총지출의 5% 이상을 목표로 과감하게 배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4.9% 수준인데, 이를 5%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말했다.
예산 규모뿐 아니라 전략적 R&D 예산을 제때, 신속하게 집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다만 현실은 정부의 일반적 회계 논리와 관리 방식이 과학기술의 속도와 창의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 기업 R&D 투자도 적극 유도하겠다. 세제 혜택과 기술금융, 규제개선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마련하고 민간이 하기 어려운 고위험·고난도 기술 분야는 정부가 선택적으로 투자하겠다”고 했다. AI나 바이오처럼 범부처 협력이 필요한 분야는 기초에서 응용, 산업화까지 이어지는 통합 투자 체계를 만들고 국책연구기관에서 연구를 지체시켜온 PBS 제도도 과감하게 개선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영임 개혁신당 선대위 과학기술특보는 “정치는 임기를 보지만, 과학기술은 세기를 내다봐야 한다”면서 “우리나라는 GDP 대비 4.96% 수준의 R&D 투자를 하고 있어 세계 2위권이다. 우리도 예산은 늘릴 생각이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지금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학기술의 중장기 전략이 흔들리는 구조다. 이 불안정성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설치하고, 정권과 무관하게 유지되는 중장기 기술 로드맵을 만들겠다. 과학기술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확보하는 거버넌스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연구비만 많이 투입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연구를 실제로 수행하는 사람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 이것이 핵심”이라며 “성과 위주의 평가와 단기 압박 구조가 연구 몰입을 방해하고 있다. 예산 배분은 탐색형 연구와 문제 해결형 연구로 나눠, 유형에 맞는 심사 방식을 도입하겠다. 이렇게 해야 연구 몰입도도 높아지고, 효율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90%에 가까운 우리 R&D 성공률이 오히려 도전적인 탐색 연구를 막고 있다며 “실패를 전제로 한 탐색형 연구도 가능하게끔, R&D 평가 체계를 혁신하겠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 인프라가 수도권에 편중됐다는 지적에 3당 선대위 관계자들은 문제의식을 함께 했다. 민주당 황정아 위원장은 “국립대 중심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전략을 통해 교육·기술·산업의 지역 자립 구조를 마련하겠다. 지역별 특화 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고, 국토 균형 발전의 첫걸음을 떼겠다”고 강조했다.
양향자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 겸 반도체·AI첨단산업본부장은 “첨단산업 클러스터 조성은 일자리와 정주 여건을 함께 갖춘 지방자립형 모델로 추진돼야 한다. 지방분권 개헌과 재정 자율성 확대, 교통 인프라 구축 등 김문수 후보의 공약을 통해 지역성장 기반을 확실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임 개혁신당 특보는 “이미 전국에 분산된 과학기술 인프라를 연결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지역을 기반으로 한 과학기술 글로벌 플랫폼 전략을 제시했다. 특히 “데이터 특구 지정과 AI 인프라 유치 기반의 법인세 감면, 병원과 대학, 리빙랩을 연계한 실증 프로젝트 등 실질적인 공약들이 이미 마련돼 있다. 이제 국토 전체를 과학기술 기반의 글로벌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방안에선 각기 다른 해법을 내놨다. 민주당 선대위는 '모두의 AI'를 통해 전국 거점별 AI 역량센터를 구축하고 계층 맞춤형 교육과 공공 AI 접근성 확대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국민의힘 선대위는 고령층과 전통시장 상인의 디지털 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체국을 '디지털 포용 거점'으로 전환하고 전통시장 상품의 디지털 연계 판매와 택배 시스템 지원을 통해 지역 소상공인의 생존 기반 전략을 제시했다. 개혁신당 선대위는 고령자, 장애인, 농어촌 등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UX·UI 기반 서비스를 정부가 전략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