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기가 차세대 반도체 기판으로 떠오르고 있는 '유리기판' 시장 선점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세계적 화학 업체 스미토모화학과 유리를 가공하는 합작사를 설립한다. '유리원장-가공 및 도금-기판'으로 이어지는 공급망을 완성한 것으로, 상업화 초읽기에 들어갔다.
삼성전기는 5일 스미토모화학그룹과 '글라스 코어' 합작법인(JV)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삼성전기가 지분 50% 이상을 보유하고, 스미토모화학이 추가 출자자로 참여하는 내용으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사는 합작법인 본사를 스미토모화학 자회사인 동우화인켐 평택사업장에 두고 초기 생산거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지분 구조, 사업 일정, 법인 명칭 등은 내년 본 계약까지 확정할 계획이다.
글라스 코어는 반도체 유리기판 종류 중 하나다. 반도체 칩을 메인보드와 연결하는 주기판을 뜻한다. 쉽게 말해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돼 메인보드와 반도체의 상호 통신을 돕는 기판이다.
기존 반도체 기판은 플라스틱이 기반이었다. 하지만 반도체가 고성능으로 발전하면서 한계에 봉착했다. 점점 뜨거워지는 반도체 열로 기판이 휘어지거나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유리기판이다. 열에 강한 데다, 두께도 얇게 만들 수 있어 고성능 반도체 구현 기술로 부상했다. 특히 대용량 데이터를 고속으로 처리해야 하는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필수로 유리기판이 떠올랐다.

삼성전기는 반도체 유리기판 시장 공략을 위해 지난해 1월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낙점하고 세종 사업장에 시험생산(파일럿) 라인을 구축했다.
회사는 그동안 샘플을 만들면서 브로드컴과 AMD 등과 사업협력을 타진했는데, 이번 스미토모화학과의 합작은 유리기판 공급망을 완성하고, 생산체계를 갖췄다는 의미여서 주목된다.
반도체 유리기판은 유리 원장을 가져다가 글라스관통전극(TGV)으로 구멍을 뚫고 도금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유리에 회로를 구현하는, 즉 전기신호가 오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삼성전기는 유리기판 개발에 미국 코닝과 독일 쇼트 유리를 활용했다. TGV와 도금은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와 독일 LPKF 장비 등으로 자체 개발도 했다.
하지만 유리 가공은 전문 기업과의 협력이 낫다는 판단해 국내외 복수 기업을 대상으로 파트너를 물색했는데 스미토모가 최종 낙점됐다. 투자 부담을 줄이고 상용화 속도를 높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삼성전기는 유리기판 생산체계를 완성해 본격적인 사업화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유리기판 상용화가 빠른 곳은 앱솔릭스다. SKC 자회사인 앱솔릭스는 미국 조지아주에 양산 라인을 준비하고 있다. 앱솔릭스도 샘플을 공급하며 협력을 타진 중이다. 삼성전기와 앱솔릭스의 시장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삼성전기는 2027년 양산이 목표다. 샘플을 공급한 브로드컴과 AMD 외에 테슬라, 애플도 반도체 유리기판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사업 기회를 발굴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AI 시대 글라스 코어는 미래 기판 시장의 판도를 바꿀 핵심 소재”라며 “스미토모화학그룹과의 합작은 각사의 첨단 역량을 결합하여 차세대 반도체 패키지 시장의 새로운 성장축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