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이른바 '서울병'이라는 신조어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서울을 다녀온 뒤 한국을 그리워하며 일상으로의 복귀가 어려울 정도로 감정적 여운이 남는다는 의미로, 단순한 여행 후유증을 넘어 문화·경험 기반의 감정 현상으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샤오홍슈와 더우인(중국판 틱톡) 등 SNS에는 '서울병'을 주제로 한 영상과 게시물이 끊임없이 업로드되며 하나의 사회적 밈으로 소비되고 있다.
처음엔 K팝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중국 팬들 사이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으나 지금은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를 향한 호감과 동경을 표현하는 폭넓은 의미로 변모했다. 실제로 팔로워 33만명을 보유한 한 중국 인플루언서는 더우인을 통해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아시아 최고 수준”이라며 “한국의 미적 감각과 가치관은 서구 문화보다 아시아권에서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고 평가했다. 그의 게시물에는 “서울 사람들은 정직하고 법을 잘 지킨다”, “한국 드라마는 중독적이다”, “한국에 다시 가서 뜨거운 열기를 느끼고 싶다”는 댓글이 줄지어 달렸다.
더우인에서는 '서울병이 더 심해졌다'는 제목의 영상이 97만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으며 대표 콘텐츠로 떠올랐다. 중국 MZ세대는 소비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데, 서울의 K팝 공연·로컬 감성 카페·한강 피크닉·편리한 대중교통 등은 중국 도시 일상에서는 쉽게 찾기 어려운 '경험 패키지'로 받아들여진다. 이 같은 흐름은 서울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한령 장기화로 중국 내에서는 K팝 공연이 9년째 열리지 않았지만 그 사이 K컬처의 영향력은 일본·미국·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 더욱 공고해졌다. 코로나19 이후 오프라인 공연이 재개되면서 한국을 직접 찾는 중국 팬도 증가했고, 여행지에서의 자유로움·친절함·안전한 치안·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 등은 서울에 대한 긍정 이미지를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귀국 후 일상과의 대비로 인해 허전함이 커지면서 이를 '서울병'이라는 감정 코드로 공유하는 문화까지 형성됐다. “길을 헤매던 나에게 한국인이 먼저 다가와 도와줬다”, “한강에서 느낀 평화로움이 잊히지 않는다”, “서울은 인생 최고의 여행지”와 같은 경험담도 흔하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확인된다. 올해 1~9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408만명으로 전년 대비 16% 증가했으며, 국가별 방문객 수 1위는 중국(424만명)이었다. 그 뒤로 일본(267만명), 대만(141만명), 미국(110만명), 홍콩(46만명)이 뒤를 이었다.
다만 '서울병'을 중국인 전체의 보편적 정서로 일반화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관광객은 한국 체류 중 언어 장벽이나 차별적 경험으로 불편함을 겪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최근 서울 성수동의 한 카페가 SNS에 “미안하지만 우리는 중국인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영어 문구를 게시해 논란이 일었는데, 실제로 중국인 방문객이 입장을 거절당했다는 글이 퍼지며 비판이 제기됐다. 카페 측은 “반중 감정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피하기 위한 일시적 조치였다”는 취지로 해명했으나 해당 문구는 현재 삭제된 상태다.
한편 중국 관광객 증가와 함께 관광지 훼손·비매너 행동 등 '관광 소음' 문제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제주 성산일출봉 흡연, 용머리해안 훼손, 경복궁에서의 불법행위 등이 잇따라 포착되며 논란을 키웠다.
그럼에도 중국 SNS 공간에서 '서울을 또 가고 싶다', '한국에서의 감정을 잊지 못하겠다'는 목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개인의 여행 경험이 감성 콘텐츠로 재가공되고, 그 콘텐츠가 다시 여행 욕구를 자극하는 순환 구조 속에서 '서울병'은 단순 유행어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