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자산과 인공지능(AI)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금융안정·혁신·소비자 보호라는 세 가지 목표 사이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스테이블코인과 AI 기술에 대한 감독 방향을 짚으며, 경직된 기존 규제를 유연한 디지털 금융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4일 서울 을지타워에서 열린 '제8차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포럼에서 “체제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식으로 네거티브 개념을 먼저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며 “시장에 존재하는 수많은 금융행위와 그 결과 발생하는 법적 책임을, 유인 구조에 맞게 체계적·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금융전문법원 및 민사적 책임 등 사법적 구조까지 함께 설계하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은 “현 단계 한국 규제는 여전히 기존 포지티브 체계에 머물러 있고, 겨우 그 반대편을 지향하는 수준에 그친다”며 “네거티브 규제를 단순히 기능적 변화 정도로 보는 인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책 트릴레마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대안도 제시됐다. '정책 트릴레마'는 금융안정(안전성)·혁신 촉진·소비자 보호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완벽하게 달성하기 어렵고, 어느 한 축을 강화하면 다른 한 축 이상이 약해지는 구조를 뜻한다.
김 위원은 “각 축을 따로 떼어 정의하면 결국 서로 다른 말만 하게 된다”며 “안전성·혁신성·소비자 보호라는 세 가지 가치를 모두 미래지향적인 공통 목표로 인정하고, 조금 더 넓고 유연하게 정의할 때 비로소 세 가지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금융 전환 흐름 속에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 방향도 집중 조명됐다. 특히 비수탁형 지갑의 확산이 스테이블코인 건전성을 위협하는 주요 위험으로 지목됐다.
김 위원은 “전세계 스테이블코인 유통의 상당 비중이 비수탁형 지갑에서 이뤄지고 있다”면서 “수탁형 지갑은 고객확인(KYC)·자금세탁방지(AML) 등 규제로 일정 부분 관리가 가능하지만, 비수탁형 지갑은 원천적으로 감독의 손이 닿기 어렵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사“라고 짚었다.
실제 IMF가 올해 7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아프리카·중동부터 아시아·태평양, 유럽, 북미 등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지갑의 98% 이상이 비수탁형 지갑에서 운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세계 시장이 규제권 밖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어 그는 “해외 주요국이 스테이블코인 제도 설계에서 '동일기능-동일위험-동일규제'와 기술중립성 원칙을 공통으로 채택하고 있다”면서 “ 국내 스테이블코인 제도 역시 원화·달러 등 통화 유형과 관계없이 가치 안정성과 탄력성을 기준으로 대칭적 규율을 마련해야 하고 외환 규제와 자금세탁방지(AML) 규제도 같은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은 미카(MiCA)를 통해 국내·외 통화 구분 없이 동일 기준으로 '중요' 스테이블코인을 지정하고 있다. 일본도 자금결제법을 기반으로 발행 주체와 준비자산 요건을 똑같이 적용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정비하고 있다.
미국 역시 사실상 은행 인허가 수준의 건전성 요건을 요구하며 금산분리 원칙에 따른 지배구조 규제를 적용한다. 예대 업무 금지, 100% 이상 안전자산 보유, 금융업 분류 및 감독당국 만장일치 승인 등이 대표적이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금융 리스크와 감독 체계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김철웅 신한은행 감사위원은 '금융분야 AI의 책임 있는 혁신을 위한 감독 방향' 발표에서 “AI 기술은 기존 머신러닝·딥러닝 단계를 넘어 생성형 AI까지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며 “AI 사고의 위험 수준은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는 반면, 이를 관리할 금융권의 내부 통제 체계는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AI 감독에서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합법성·신뢰성·신의성실·보완성 등 일곱 가지 원칙 가운데 핵심 네 가지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꼽으며, 금융소비자보호법 관점에서 AI가 설명의무·적합성·적정성·광고 규제를 어떻게 준수하는지가 중요한 핵심“이라고 짚었다.
이어 김 위원은 “AI 인프라 확충 논의가 GPU 확보를 넘어, AI 학습 데이터와 모델 활용에 대한 규제 전환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공익성과 안전성이 확보되는 영역에서는 데이터 활용 범위를 적극적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익성이 분명한 영역부터 데이터 규제를 유연하게 재설계해 나가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금융사기 탐지(FDS) 분야가 대표적이다. FDS는 별도의 고객 동의 없이도 데이터를 수집·활용해 이상 거래를 탐지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두고 있으며, 이는 모델 고도화를 가능하게 한다.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