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정부는 지난달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고위급 회의에서 2035년까지 국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겠다고 공언했다. 도전적 목표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태양광·풍력·전력망·에너지저장장치(ESS)·히트펌프 등 기후테크를 발굴·육성해 '대한민국 녹색 대전환(K-GX)'을 가속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산업계를 중심으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고, 기업 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경쟁 여건 등을 고려해 산업 부문 감축 부담을 완화하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자신문은 10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컨퍼런스센터에서 '2030 기후테크 3대 강국 도약 전략' 을 주제로 한 '기후테크이니셔티브 3차 토론회'를 더불어민주당 박정·위성곤·강득구 의원, 국민의힘 김성원·김형동·김소희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6명과 함께 공동 개최했다. '2035 NDC' 목표 달성을 견인할 게임체인저 '기후테크'를 발굴·육성하기 위한 세 번째 토론회다.
이호현 기후에너지환경부 2차관,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 최재철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장, 김준범 프랑스 트루아공대 교수, 김성우 김앤장 환경에너지연구소장 등 각 분야 전문가가 참석해 글로벌 기후테크 패권을 선점하기 위한 과제와 전략을 모색했다.
◇美 기후정책 후퇴 우려에도…“글로벌 재생에너지 확대 추세 꺾이지 않을 것”
최근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대형 오염원 배출 기업을 대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를 의무화하던 '온실가스 보고 프로그램(GHGRP)'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내 산업 현장에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 해외 기후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는 이유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의 NDC 실효성에도 의구심이 커지는 형국이다.
김성우 김앤장 환경에너지연구소장은 “미국 트럼프 정부가 재생에너지라고 다 구박하지는 않는다. 연료전지, 청정연료 보조금 지원 기간은 오히려 늘었다”면서 “재생에너지 시장에 장기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재생에너지 신규 설비가 585GW로 약 600GW다. 우리나라 전체 전력설비용량(작년 기준 153GW)의 4배다. 지난해 글로벌 재생에너지 신규 설비에서 미국 비중이 7%(43GW) 정도다. 김 소장은 “미국이 재생에너지를 절반으로 줄어도 전체 추세가 꺾이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600GW가 작년 한 해 추가된 것은 일부 지역에서는 경제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등 특정 국가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상기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녹색성장국장은 “트럼프 정부에서 주춤하는 시기를 우리가 선도국을 추격하는 골든타임으로 인식하고 기후테크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 “기후테크는 주력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필수요소일뿐 아니라, 신산업을 창출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전력 수요는 내년 3만2523TWh로 늘어나고 2030년 3만7000TWh에 이를 전망이다. 이를 충족하기 위한 발전설비 용량은 1만4000GW 규모인데 앞으로 4500GW의 추가 설비 확보가 필요하다. 5년 내 1000조원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수요가 급증하면 가격 경쟁력과 사업수행 속도에 강점이 있는 한국이 향후 글로벌 재생에너지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소장은 “전력망 노후화, DC배전 확대로 인한 전력기기 수요가 증가할 것이며 한국에는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있다”면서 “원전 운영을 원팀으로 40년 동안 수행해온 경험에 대한 전 세계 발주처의 수요가 있다. K-건설은 합리적 가격으로 빠르게 건설하는 것이 강점이고, 가스터빈 등 발전기도 합리적 가격으로 종주국 미국에 수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2030·2035 NDC가 도전적 목표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달성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최재철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은 “우리 경제의 발전 방향과 에너지 안보, 특히 AI·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전력의 안정적 공급과 전력망 확보 등을 면밀히 검토해 복수의 목표 달성 방안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면서 “NDC 목표의 의욕성 평가를 넘어 유연성을 갖고 실행 가능한 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기후테크, 수요가 있어야 공급도 있다…연구-산업-금융 하나의 생태계”
K-기후테크가 기술적 실증 단계를 넘어, 한국 경제와 사회의 근본적 전환을 이끌 핵심 동력이 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준범 프랑스 트루아공대 교수는 “대전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연구-산업-금융이 하나의 생태계로 협력해야 한다”면서 “혁신 기술을 신속히 시장에 내놓고 자본이 장기적인 미래 기술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전환 과정에서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책은 기업의 경쟁력과 일자리를 고려해야 하며, 동시에 에너지 취약 계층을 보호하고 새로운 기후 인프라에 대한 지역사회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기복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업·건물부문의 에너지전환은 다양한 요소기술의 실증을 통한 신기술 안정성 확보가 전제돼야 하므로 기후테크 분야에서의 신시장 창출 효과도 클 것”이라면서 “수소화·전기화에 따른 설비전환에 대한 세제·금융지원과 더불어 원료확보, 전력요금 관점에서도 비용완화 조치가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서울대학교가 최근 실시한 전문가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내 산업의 탄소경쟁력은 아직 미흡하고 기술수준은 70%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이 꼽은 탄소경쟁력 강화를 저해하는 분야별 애로사항은 대부분 자금과 관련된 것이지만, 낮은 탄소가격이 장애가 된다는 의견도 높게 나왔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영역으로는 '기술개발'과 '시장조성'이 꼽혔다.
민상기 국장은 “기후기술의 상용화 시점은 정부의 기술개발 및 시장조성 지원 정도와 탄소가격의 상승 속도 등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면서 “미국이 주춤하는 이 골드타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용진 KIS자산평가 ESG사업본부장은 “기후테크 내에도 다양한 기술과 기술로드맵이 분포하고 있는만큼 연구개발부터 파일롯, 실증, 초기 도입, 상용화에 이르기까지 공공과 민간금융이 상용화 단계별 리스크를 분담하면서 기후테크 투자에 대한 질적·양적확대를 빠르게 확대할 수 있는 촉매 같은 시범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지형 알스퀘어 이사는 “벤처 특화 실증-상용화 브릿지 펀드를 조성한다면 기술 검증 후 시장 진입까지 평균 3~5년 자금 공백을 메워울 수 있을 것”이라면서 “공공조달 혁신제품 우선 구매 의무 비율을 상향해 국내 수요 기반을 구축하면 글로벌 수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허 빅데이터 기반 기술 로드맵 공유를 확대해 글로벌 경쟁사 대비 우리 위치를 알면 중복 투자를 막고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기후테크 육성뿐 아니라 도입 지원, 전체적인 기업수요 육성에 방점을 둔 종합적인 제도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오지헌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우리나라도 지난 2월부터 CCUS(탄소포집·활용·저장) 기술 개발과 산업화를 촉진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포집·수송·저장 및 활용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는 등 입법지원이 있다”면서 “그 못지 않게 기후테크를 이해하고 적용, 투자하려는 기업들의 니즈를 촉진하고 테크의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인식 IBK기업은행 ESG경영부장은 “기후테크 기술개발, 제조, 서비스 공급기업을 대상으로 한 금융지원과 투자도 중요하지만, 기후테크 기업의 제품·서비스를 도입해 녹색전환을 할 탄소집약 수요기업에 대한 금융지원도 중요하다”면서 “전자가 녹색금융이고, 후자가 전환금융이며 이를 묶어 기후금융이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녹색금융을 다뤘다면 이젠 전환금융을 잘 설계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 조성우 기자 good_s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