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욱의 AX시대의 고객경험]〈6〉AI 콘텐츠 범람 시대, 브랜드의 선택

전상욱 HSAD 디스커버리센터장
전상욱 HSAD 디스커버리센터장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진짜 변곡점은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와 영상'에서 시작된다. 텍스트는 이해를 돕지만, 이미지는 직관을 자극하고, 영상은 감정을 점령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것은 이미지, 영상 생성형 AI의 급격한 진화다. 즉각적인 이미지 생성과 변형을 가능하게 하는 구글의 나노 바나나(Nano Banana), 물리적 법칙을 반영하고 사운드까지 포함한 영상을 생성하는 소라2(Sora2), Veo3와 같은 AI 툴로 누구나 손쉽게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이제 영상은 '찍은 것'이 아니라 '조합하는 것'이 되었고, 제작은 전문 스튜디오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 가능한 사용자환경(UI)이 되었다. 하지만 콘텐츠 제작이 쉽고 빨라졌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누구나 무의미한 콘텐츠를 무한대로 쏟아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택이 어려울 정도로 콘텐츠 생태계 전체가 과잉 공급 상태로 진입하게 되면, 고객은 결국 알고리즘과 플랫폼이 제공하는 '쉬운 것'을 소비하게 된다. 고객 경험의 주도권이 '브랜드 메시지'가 아니라 '피드의 관성'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AI슬롭'이라 불리는 저품질 AI 생성 콘텐츠의 범람이다. 슬롭(Slop)은 원래 가축에 주는 음식 찌꺼기를 뜻하는 말로, AI가 대량으로 쏟아내는 무의미한 콘텐츠를 빗댄 표현이다. '스팸'이 이메일 시대의 쓰레기였다면, 'AI 슬롭'은 생성형 AI시대의 새로운 디지털 공해다.

이러한 AI슬롭 현상이 브랜드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이제는 대기업이나 유력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방구석 익명 크리에이터, 심지어 악의적인 목적이나 브랜드를 사칭하려는 집단도 AI 제작툴을 이용해 높은 퀄리티의 콘텐츠를 몇 분만에 만들어낸다. 보기 좋은 콘텐츠가 더 이상 좋은 브랜드를 담보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무분별한 AI슬롭의 확산은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브랜드 이미지는 통제되고 일관된 메시지를 통해 구축되는데, AI가 생성한 무차별적 콘텐츠는 이를 순식간에 희석시킬 수 있다.

결국 AI가 쏟아내는 무한한 콘텐츠의 범람 속에서 브랜드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미지의 화려함'이 아닌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선명함'에 있다. AI 제작 툴이 누구에게나 제작 능력을 제공하는 순간, 브랜드의 차별성은 '무엇을, 어떤 맥락으로, 얼마나 일관되게 말해왔는가'에서 결정된다. 이제는 브랜드 세계관을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해석하며, 장기적 서사 관점에서 콘텐츠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결국 인공지능전환(AX)시대 고객 경험은 AI가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결과물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관리된 브랜드 서사 위에서만 안정적으로 형성된다. AI가 콘텐츠 생산의 비용과 시간을 낮출수록, 브랜드는 더 강한 기준과 더 높은 판단력을 요구받는다. 무엇을 생성할 것인가 보다 어떤 정체성을 전달할 것인가,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만들 것인가보다 어떤 스토리로 기억될 것인가가 브랜드의 성패를 가른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가치를 담아낼 것인가는 여전히 우리의 선택이다. 기술의 평준화는 오히려 브랜드 관리의 전문성을 돋보이게 할 것이며, 체계적인 전략 하에 자신만의 단단한 서사를 구축해 나가는 브랜드만이 AI슬롭이라는 디지털 공해를 뚫고, 고객에게 대체 불가능한 고유의 존재로 각인될 것이다.

전상욱 HSAD 디스커버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