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K콘텐츠 IP비즈니스, 판부터 다시 짜보자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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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상콘텐츠 산업에서 지식재산(IP)은 일종의 '계륵'과 같다. '오징어게임'과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 이후 IP가 중요하다는 인식은 확대됐지만, 정작 IP를 확보해서 돈을 벌어 본 경험은 많지 않다. 국내 콘텐츠 기업의 IP확보를 지원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정작 사업자의 입장에서 확보한 IP를 활용한 사업화를 추진하기에는 여러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드라마' 산업의 특수성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이야기 한다. 일단 드라마는 제작비 규모가 매우커서, IP확보를 위한 재원 투입에 한계가 있다. 이미 국내 방송 광고 시장 만으론 제작비 회수가 어려운 수준으로 높아진 제작비를 감당할 사업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IP비즈니스를 통한 수익의 기대 수준이 낮다보니 IP확보보다 제작비에 일정 수준의 이윤을 확보하는 방식이 더 단기 이익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또 '배우'가 중심이 되는 콘텐츠의 특성이 주는 한계도 명확하다. 일단 IP상품화에 있어서 배우의 초상권을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제약이다. 배우라는 변동성이 높은 자원에 의존하는 콘텐츠가 갖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일단 권리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을 뿐 아니라, 보통 짧은 시즌으로 마무리 되는 특성 때문에 중장기로 소비되어야 하는 IP상품의 사이클 측면에서도 불리하다. 반면에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IP상품화의 다양성 측면이나, 작품의 소비 기간 측면에서도 중장기 비즈니스 설계에 유리하다.

한국 영상 산업이 IP비즈니스 관점에서 여러 제약과 어려움이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그렇다고, IP비즈니스를 외면할 수도 없다. 전통적인 방송 광고 시장은 위축되고 있고, 사전 제작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시의성이 중요한 PPL의 활용에도 한계가 있으며, 글로벌 OTT를 제외하면 한국 콘텐츠의 해외 시장 판매를 확장할 대상도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성장성을 기대해볼 수 있는 분야는 여전히 '굿즈'로 대표되는 IP비즈니스 시장이다. 성장하는 시장을 포기하고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심지어 지금의 한국 영상 콘텐츠 산업은 자연스럽게 국내에 IP가 쌓이는 구조가 아니다. 개별 주체들의 합리적 선택, 즉 단기 이윤 추구의 결과는 IP가 지속적으로 글로벌 사업자에게 유출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의 창의적 역량이 무한정 공급될 수 있어서 늘 새로운 IP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나마도 괜찮을 수 있지만, 젊은 인구가 줄어드는 지금의 인구 전망을 생각한다면 이 조차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불가능'이 아니라면, 어려움을 뚫고 나갈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5.2). 2024 콘텐츠IP 거래 현황조사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5.2). 2024 콘텐츠IP 거래 현황조사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5.2). 2024 콘텐츠IP 거래 현황조사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5.2). 2024 콘텐츠IP 거래 현황조사

◇영상 콘텐츠 IP 전략의 새로운 흐름들: 사업 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인력의 성장

최근 대표적인 드라마 제작사인 '스튜디오 드래곤'은 새로운 사업 전략으로 IP를 강조하며 기존에 3%에 불과했던 IP사업의 매출을 최대 30%까지 높여가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기존에 드라마 제작에 집중되었던 역량을 IP총괄 코디네이션으로 확장해서 'IP종합 스튜디오'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IP비즈니스를 정의하는 방식이다. 기존에 PPL, OST, MD 굿즈로 한정되었던 IP전략을 커머스, 디지털(유튜브, 숏폼), 캐릭터, 그리고 휴먼IP(신인배우)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 프로듀서의 역할 역시 스토리 창작자를 넘어 'IP비즈니스 디자이너'로 확장해나가겠다는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이 흥미로운 것은, IP사업을 전면에 내세우는 과정에서 새로운 IP의 영역을 발굴하고 기존 인력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전환'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에 대한 의존으로 IP 활용이 어렵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휴먼IP'를 사업 영역으로 확보한다. 타 사업자의 브랜딩에 도움을 주는 PPL을 넘어서, 스스로 자체 브랜드를 구축하며 커머스로 확장한다. 본편과 디지털 콘텐츠의 연계를 긴밀하게 연결하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소비되던 드라마 콘텐츠의 한계를 극복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사전에 이러한 IP비즈니스의 구조가 나올 수 있는 작품을 기획하고, 이를 위해 관련 인력과 조직을 재배치한다. 즉, 기존의 구조에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IP전략이 가능한 형태로 전략 체계 전반을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시도가 당장의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낙관하긴 어려울 것이다. 기존에 드라마 제작에 최적화되어 있던 조직 문화가 한순간에 바뀌기 어렵고, 커머스와 휴먼IP 등은 기존과 다른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사업 영역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시도가 의미를 갖는 것은 IP비즈니스를 중심으로 기존의 산업 전반을 전제를 다시 검토하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 기존에 없던 비즈니스의 역량이다. 새로운 인재가 필요한 영역이다. 문제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에 있다. IP의 관점에서 영상 산업을 충분히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 부분에 집중할 수 있는 시도를 쌓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도 이미 중요한 전환은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예능 콘텐츠 분야에서는 IP사업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명한 에그이즈커밍 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해 창사 이래 최고 수익을 거두었다고 밝히며, 장기적으로 광고 매출과 부가사업 매출이 현재의 8대2 정도에서 5대5 수준으로 조정해나가야 한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에그이즈커밍은 다양한 콘텐츠를 IP관점에서 사업화하고 있으며, 2024년의 '토롱이 팝업'이 굿즈 매출만 8억원을 거둔 것으로 알려지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중요한 건 이러한 IP비즈니스를 담당하는 마케터라는 존재다. 기존의 창작자가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면, 마케터는 IP를 확장하며 팬덤의 마음을 읽어내는 과정 전반의 경험을 기획하고 관리한다. 새로운 차원의 역량을 가진 인재의 참여가 사업적 확장을 가능하게 하고, 이러한 '직무'가 자리잡으며 관련 인력이 성장하는 구조가 마련되는 것이다.

◇기업 간 새로운 협력은 가능할까?: 한국형 제작위원회의 가능성

개별 기업 차원의 노력을 넘어서, 여러 주체 간의 새로운 협력의 모델에 대한 모색도 필요할 것이다. 특히 제작비가 급등하고 기존 재원 조달의 핵심 기반인 방송 광고 시장이 붕괴된 현재의 상황에서, 단일 제작사가 모든 리스크를 짊어지는 구조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형 제작위원회'의 가능성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제작위원회란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주로 활용되는 방식으로, 영상 제작사뿐만 아니라 방송사, 완구사, 출판사, 음반사 등 관련 기업들이 프로젝트 기획 단계부터 지분(Equity)을 투자해 리스크를 분담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컨소시엄 모델이다.

과거에도 한국형 제작위원회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참여 기업 간의 이해관계 충돌, 무엇보다 부가 사업 시장의 협소함으로 인해 잘 정착되지 못했다. 다만, 현재의 시점에서 IP비즈니스 활성화를 위한 대안적 모델로서 그 가능성을 재검토해볼 필요는 있다. 일본에서도 제작위원회 모델이 정착된 것은 버블 붕괴 직후 방송 광고 시장의 위축으로 인한 스폰서의 역할 축소와 MD굿즈 판매의 증가 등 팬덤 비즈니스의 성장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지금의 한국도 당시 일본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광고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의 한계를 맞이한 시점에서, IP를 즐기고 소비하는 팬덤 비즈니스 시장은 성장하고 있다. 기존의 제작 모델이 한계를 맞이하고 있는 시점에서 IP전략을 중심에 둔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과 동일한 방식의 제작위원회를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하자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기획 단계부터 이종 산업 간의 가치사슬을 결합하는 전략적 연계에 있다. 영상 제작사뿐만 아니라 웹툰(원작), 게임, 소비재 기업 등이 초기부터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통해서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해서 사업을 전개하는 방식을 검토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IP비즈니스를 위한 전문성을 확보하고, 제작 단계에서의 선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분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협력' 모델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일본의 제작위원회 모델의 핵심은 참여 기업들을 조율하고 사업의 투명성을 담보할 '간사 회사'의 존재다. 창작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비즈니스 타임라인을 관리하고 수익을 투명하게 정산해 줄 신뢰할 수 있는 주체의 존재가 다양한 기업의 협력을 중장기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아직 한국은 이러한 기업 간 협력의 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이러한 새로운 비즈니스 구조가 형성될 수 있는 '초기 단계'를 지원할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의 필요성이 있다. 이종 산업의 파트너들이 확신을 갖고 투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파일럿 영상 제작이나 비즈니스 모델(BM) 검증 비용을 지원하고, 다양한 산업군이 만날 수 있는 네트워크의 장을 열어주는 방식의 지원을 고민해야 한다.

◇K영상 콘텐츠 IP비즈니스, 계륵을 넘어 미래 산업 동력으로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 영상 콘텐츠 산업에서 IP비즈니스는 불가능한가? 그저 '확보'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활용은 어려운 '계륵'일 뿐인가? 아니면 계륵을 넘어 산업의 판을 바꿀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인가? 그동안 한국의 영상 콘텐츠 산업에서 IP 비즈니스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여러 이유들을 이야기해왔다. 물론 허황된 기대를 품기 보다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기존의 산업을 지탱하던 여러 전제와 기반이 모두 흔들리는 시점에서, 이제 불가능의 이유보다 가능을 위한 전략을 고민하는 일에 조금 더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계'를 이야기하는 단계를 넘어서, 우리가 가진 강점에 주목하며 약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판짜기'를 고민해야 한다.

방송영상 분야를 넘어서 다른 분야를 살펴보면, IP비즈니스의 가능성을 일부 확인할 수 있다. '핑크퐁 컴퍼니'나 'SAMG엔터테인먼트'가 상장을 통해 보여준 성장은, 잘 키운 슈퍼 IP 하나가 어떻게 기업의 가치를, 나아가 산업의 지형을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실사 영상 콘텐츠는 애니메이션과 결이 다르다. 하지만 캐릭터와 세계관을 통해 팬덤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비즈니스의 확장성을 확보한다는 본질은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IP비즈니스 생태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팬덤의 마음을 읽고, IP의 핵심요소를 상품화하는 역량을 가진 인재는 K팝과 애니메이션, 게임 산업 등 여러 산업 곳곳에서 성장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축적된 힘을 K영상 콘텐츠의 경쟁력으로 연결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선 정책적 노력도 중요하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직개편을 통해 '콘텐츠IP' 관련 업무를 '문화산업기반과'로 이관한 것은 흥미로운 변화다. 기존에 '대중문화산업'의 영역으로 다뤄졌던 '캐릭터 및 이야기 산업', 즉 'IP'의 담당 부서가 금융, 세제, 인력 등을 담당하는 과단위로 이관된 것이다. 아직 세부적인 IP비즈니스 정책이 콘텐츠 산업 전반의 IP경쟁력 강화 전략으로 확대된 것은 아니지만, 콘텐츠IP 관련 정책이 보다 총괄적인 성격을 갖는 단위로 달라진 것은 분명 유의미한 변화다. 앞으로 콘텐츠 산업 전체의 IP역량이 상호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보다 혁신적인 정책들이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분명한 것은 2026년에는 보다 다양한 K영상 콘텐츠에서의 IP비즈니스 확장의 시도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하루아침에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시장에 안착하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차를 견뎌내야 한다. 지금 뿌리는 씨앗은 당장의 수익이 아니라,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토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이러한 시도들이 남길 새로운 '축적'에 주목하자. IP비즈니스가 '계륵'을 넘어서, K콘텐츠 산업을 지탱하는 미래 산업 동력이 될 수 있는 씨앗이 뿌려지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sky153@knou.ac.kr

〈필자〉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디어-콘텐츠 정책 분야와 미디어 역사 분야에서 다수의 연구를 수행해왔다. 문화정책 분야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콘텐츠 산업 현장의 변화를 정책의 언어로 담아내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주요 연구로는 '한국 신문의 사회문화사'(공저, 2013), '언론사 문화사업의 역사와 사회적 의미'(공저, 2014), '콘텐츠 산업 트렌드 2025'(공저, 202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