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기존의 정상과학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누적되는 경우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가 일어난다고 했다. 세계관의 변화와 새로운 접근법을 통해 이전의 낡은 틀을 대체하고 새 정상과학으로의 혁명적인 전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전 틀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환경변화는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한국 콘텐츠산업은 그동안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며 글로벌 경쟁환경에 대응하면서 변화와 혁신을 거듭해 세계시장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했다. 성공의 바탕은 역량과 기술이 뛰어난 콘텐츠 창작자들과 그 종사자들이다. 그리고 콘텐츠산업 육성과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다양한 정책도 그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데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네트워크 플랫폼의 확산, 인공지능(AI)기술의 발달과 급변 등은 콘텐츠산업의 시스템과 구조를 완전히 변혁시키고 있다. 기존의 성공 방식이나 정책을 답습하는 형태로는 콘텐츠산업의 성공을 보증할 수 없다. K콘텐츠산업은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에 있다.
콘텐츠산업은 그동안 역량을 갖춘 창작자가 중심이 되었다. 정부 정책도 이에 집중됐다. AI는 콘텐츠 창작과 유통 등 콘텐츠산업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전문성을 갖춘 콘텐츠 창작 전문가에서 일반인들도 손쉽게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기획에서부터 유통에 이르는 콘텐츠산업 시스템에 AI가 대체하거나 채워주면서 진입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AI와 콘텐츠산업은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AI에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허은영은 기술비친화적 집단의 경우 AI에 대해 직업대체 불안, 책임 증가 신호 등으로 받아들여 인지적 ·심리적으로 왜곡, AI 수용에 구조적 억제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허은영 (2025.12) 'AI 수용에 관한 통합모델 IAM-AI'-서강대 가상융합대학원 메타버스 전공 박사학위 논문)
콘텐츠산업 내에서 종사자 및 장르별 AI 격차는 경쟁력 저하와 시장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 플랫폼은 콘텐츠 유통에서 국경장벽을 해체하면서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 문제를 완화하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과 AI의 결합은 매우 많은 콘텐츠를 실시간 실험하며 데이터를 통해 검증, 그 성공 가능성을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 플랫폼의 가용 가능한 거대 자본은 별개로 하더라도 세계 콘텐츠 이용자들의 취향, 선호도 등 해외시장 진출에 필요한 데이터와 분석 등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에 중요한 데이터 확보도 이들 플랫폼에 종속되는 구조로 고착될 수 있다. 한국 콘텐츠산업의 발전과 한류 확산이 이들 플랫폼의 정책에 좌우될 수 있다.
한국 콘텐츠산업이 성장하고 한류가 지속하기 위해서는 기본으로 돌아가 다시 접근해야 한다. 새롭고 다양하며 또 완성도 높은 K콘텐츠들이 더 많이 창작되고 유통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AI와 글로벌 네트워크 플랫폼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콘텐츠 생태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콘텐츠 창작자와 AI 플랫폼 사업자 간의 분쟁이 확산되고 있다. 분쟁의 양산은 콘텐츠산업을 왜곡하고 발전을 저해할 것이다. 기존 시스템과 제도로는 새로운 양상의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어렵고 또 다른 부작용을 양산하게 된다. 변화되는 패러다임에 맞는 산업시스템과 정책지원 제도가 필요하다.
기존의 패러다임은 새로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때 무너진다. AI와 글로벌 네트워크 플랫폼 등으로 K콘텐츠산업은 글로벌 경쟁과 이전과는 다른 규칙이 지배하는 새 패러다임으로 이동하고 있다. 정책의 미세 조정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에 콘텐츠산업과 지원정책에 대한 관점의 이동이 필요하다. 2026년은 기본에서 재설계를 해야 할 시점이다.
조현래 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특임교수·前 한국콘텐츠진흥원장
*콘텐츠의 맥(脈): 콘텐츠산업은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에 있으며, 기본에서 다시 보고 재설계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앞으로는 콘텐츠와 관련해 다양한 개별 이슈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