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은 인공지능(AI)과 딥테크가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는 기술 패권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 특히 이번 정부가 AI를 국가 전략 기술로 격상하고 2030년까지 AI·딥테크 스타트업 1만개 육성과 유니콘 기업 50개 창출을 선언한 것은 단순한 산업 정책을 넘어선 생존 전략이다. 이제 AI는 디지털 전환을 넘어 국가의 주권과 안보를 강화하는 핵심 동력이 되었으며, 자국 기술로 독립적인 운영체계를 갖추는 '소버린 AI(Sovereign AI)' 확보는 21세기 디지털 독립운동과 다름없는 시대적 과업이 되었다. 경영사 연구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정책적 결단은 지난 50년간 우리 선배들이 척박한 땅에 일궈낸 '기술적 영토'라는 역사적 자산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당연하게 쓰는 '초고속 인터넷'은 사실 50년 전, 세계 최빈국에서 기술 패권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인생을 걸었던 설계자들이 닦아놓은 '피와 땀의 영토'다. 1980년대 청계천 창고에서 낡은 인두기를 들고 밤을 지새웠던 청년이 2026년 판교의 세련된 사무실에서 거대언어모델(LLM)을 훈련시키는 딥테크 창업가의 모습으로 타임 슬립한 듯 겹쳐 보일 때, 비로소 이 서사는 완성된다. 이 연재는 바로 그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대한민국이 가야 할 다음 50년의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정보기술(IT)의 역사는 국가 주도의 정교한 '마스터플랜'과 민간의 '기업가정신'이 상호작용하며 확장해온 거대한 서사다. 1980년대 전산화 혁명은 오명 등 기술 관료들이 설계한 '컴퓨터와 통신(C&C)' 패러다임이라는 명확한 철학적 기반 위에서 태동했다. 이들이 구축한 국가 기간 전산망은 한국이 정보경제 체제로 이행하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으며, 삼보컴퓨터 이용태 사장이 주도한 민관협력 모델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단기간에 전산화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하드웨어와 인터넷 인프라의 자립은 이후 1990년대 전길남, 권욱현 교수가 이끈 연구실 인재 양성과 한글과컴퓨터, 안랩 같은 벤처기업들이 보여준 소프트웨어 주권 수호 의지로 이어지며 한국 IT의 독자적인 엔진을 형성했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기술적 성취의 이면에는 해결해야 할 엄중한 과제들이 상존한다. 기술 혁신이 숙련 노동에 대한 수요만 증가시켜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숙련 편향적 기술 진보'와 플랫폼의 알고리즘 지배 문제는 우리가 성찰해야 할 문제다. 2026년의 지능정보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진정한 기술 패권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술의 속도를 쫓는 것을 넘어, 포용적이고 민주적인 디지털 환경을 설계하는 '지속가능한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기술적 전문성을 넘어 사회적 공감과 윤리적 책임을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의 '디지털 리더십'을 요구한다.
본 칼럼은 대한민국 IT 산업이 전산화 혁명에서 시작해 초고속 인터넷 강국을 거쳐 현재의 AI 주권 시대로 진화해온 과정을 경영사(Business History) 관점으로 분석한다. 과거의 역사적 결정점들을 되짚어보는 이 여정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작업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 산업을 설계하는 지침서를 쓰는 일이다. 50년 전 황무지에 전산 자립의 나무를 심었던 그 마음으로, 현재의 우리가 AI, 스타트업이라는 기술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 어떻게 더 공정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설계할 것인지 묻고자 한다. 축적된 기술적 영토 위에서 우리는 이제 새로운 유니콘들의 비상을 준비하며 기술 패권 시대의 주역으로 당당히 서야 할 것이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경영사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