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 환자의 생존율을 크게 떨어뜨리는 치명적 합병증인 '암 악액질'을 유발하는 핵심 메커니즘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규명됐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총장 임기철)은 다런 윌리엄스 생명과학과 교수와 정다운 연구교수가 암 악액질을 유발하는 이전에 보고되지 않았던 세포 간 신호 전달 경로를 세계 최초로 규명하고 이를 차단하는 치료 전략을 제시했다고 29일 밝혔다.
암 악액질은 암으로 인해 전신 대사 균형이 무너지면서 근육과 체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질환이다. 암이 상당히 진행된 환자의 약 80%에서 발생하며 전체 암 사망의 20~30%와 연관된 심각한 합병증이다. 단순한 영양 부족과 달리 충분히 식사를 해도 회복되지 않는 것이 특징으로 환자의 체력과 면역 기능을 급격히 저하시켜 항암 치료 효과 감소와 생존율 저하로 이어진다. 이러한 임상적 중요성에도 불구, 현재까지 암 악액질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이나 명확한 치료 타깃은 확립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단서로, 암을 둘러싼 종양 미세환경에 주목했다. 종양 미세환경은 암세포뿐 아니라 면역세포, 혈관세포, 섬유아세포 등 다양한 세포들이 상호작용하며 형성하는 복합적인 조직 환경이다. 이 가운데 '암 연관 섬유아세포(CAF)'는 정상 섬유아세포가 암에 의해 변형된 세포로, 암의 성장과 전이, 면역 회피를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CAF가 암 악액질, 특히 근육 소모를 유발하는 과정과 그 구체적인 작동 원리는 그동안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암세포와 CAF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특정 단백질인 'CXCL5'의 분비가 크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CXCL5가 근육 소모를 직접적으로 유도하는 핵심 인자임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지금까지 CAF는 암의 성장과 전이, 면역 회피에 관여하는 세포로 주로 연구돼 왔으나 CAF가 분비하는 CXCL5가 암 악액질의 핵심 원인 인자임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한 것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다.
연구팀은 실제 환자 환경을 반영한 실험을 통해 연구 결과의 임상적 타당성을 입증했으며 동물실험과 분자 수준 분석으로 CXCL5 차단의 치료 가능성도 입증했다. 또 환자 종양 조직 분석을으로 연구 결과의 임상적 근거도 추가로 확보했다.

이번 연구는 실험실 세포 실험에 그치지 않고, 환자에게서 얻은 세포와 동물 실험, 실제 환자 종양 조직 분석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암과 주변 세포가 근육 소모를 유발하는 과정을 실제 환자 상황에 가깝게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런 윌리엄스 교수는 “이번 연구는 환자 유래 암 연관 섬유아세포(CAF)와 실제 종양 조직 분석을 통해, CXCL5가 종양 미세환경에서 근육 소모를 유도하는 핵심 인자임을 임상적으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