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 “홈플러스보다 우리가 먼저 파산한다”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 날씨에 한층 더 싸늘하게 보이는 곳이 있다. 홈플러스 매장 안에 즐비하게 서 있는 매대다. 이들 매장에서는 하루 5만원 매출도 올리지 못하는 소상공인이 오늘 하루를 버티고 있다. 폐점을 고민하는 점포에서는 철거비조차 감당하지 못해 진퇴양난에 빠진 점주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입점 업체들 사이에서 “홈플러스보다 우리가 먼저 파산할 것 같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나온다.

윤희석 기자
윤희석 기자

정부는 앞서 긴급 경영안정자금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금리를 최저 수준으로 낮추며 철거비 한도도 상향 조정하는 등 홈플러스 입점 소상공인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존 대출 한도가 이미 한계에 달해 추가 자금 지원이 차단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복잡한 절차와 심사 기준, 시간 지연으로 '긴급'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보증 한도 제한, 업종별 지원 제외, 은행의 까다로운 태도 등 금융 장벽은 여전히 높다. 지원금이 나오더라도 생계 회복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폐점이라도 결심하면 수천만원이 넘는 인테리어 원상복구 비용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적자를 계속 내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틸 수밖에 없다.

정부는 홈플러스 입점 소상공인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금융 지원의 유연성이 급선무로 꼽힌다. 재난에 준하는 이번 사태의 특수성을 고려해 기존 대출 한도와 무관한 별도의 긴급 자금 공급 가능성을 살펴봐야 한다. 은행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자금 대출 방안도 절실하다. 복잡한 심사 체계를 간소화해 적기에 자금을 수혈할 수 있는 방법도 필요하다.

또, 홈플러스의 경영 실패로 인한 폐점 상황에서 소상공인에게 원상복구 비용의 책임을 전가하는 불합리한 관행을 차단할 수 있는 행정·법률적 중재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정책이 현장의 절박함을 외면한다면,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들을 적극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소상공인은 우리 경제의 모세혈관이자 서민 경제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이들이 무너지는 것은 곧 수많은 가계의 붕괴와 지역 상권의 소멸,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홈플러스 사태는 입점 소상공인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사모펀드의 경영 실패와 무책임한 자본 운용에서 비롯된 피해다.

생성형AI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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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홈플러스는 법원에서 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폐점 점포 수는 이미 17곳을 넘어섰다. 상황에 따른 추가 폐점 가능성도 나온다. 다만, 이 같은 상황에 가장 고통 받는 이는 홈플러스 본사가 아니라 내부의 수백 명 소상공인들이다. 홈플러스가 한 매장의 폐점을 결정할 때마다 해당 점포에 입점한 소상공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사모펀드의 경영 실패가 불러온 충격이 결국 영세 상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칼날로 돌아오는 셈이다.

정부는 소상공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폐업의 공포로 밤잠을 설치는 상인들에게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것은 내일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지원책이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개최한 홈플러스 입점 소상공인 간담회에서 입점 업체들의 의견을 다각도로 수렴하는 한편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추가 정책을 고민하겠다고 약속했다.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정부의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행동을 기대한다.

윤희석 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