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박건영의 셀프 입시]⑥건축학으로 가는 생기부

박건영 이투스에듀 센터장.(사진=이투스에듀)
박건영 이투스에듀 센터장.(사진=이투스에듀)

1.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공학적 예술가'를 원한다

초창기 입시 현장에서 건축학과 지원 학생들의 생기부를 검토할 때마다, 나는 유사한 패턴을 보았다. '건물을 예쁘게 디자인 하고 싶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다', '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감명받았다' 등인데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합격생들의 생기부에는 다른 언어가 흐른다. 학생들은 다리를 건너다 느낀 진동을 타코마 대교 붕괴 사건으로 연결하고, 그 원인을 '공명 현상'이라는 물리적 언어로 설명해 낸다. 한편으로는 한옥 지붕의 완만한 곡선에서 사이클로이드를 발견하고, 금문교 케이블에서 이차함수를 읽어낸다. 감상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2. 1단계(1학년): 호기심의 천국, 일상과 공간을 연결하다

1학년은 지식을 쌓는 시기인 동시에 일상의 현상에 질문을 던지는 시기다. 건물을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 건축과 환경,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첫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경희대 건축학과 합격생의 경우를 보자. 이 학생은 1학년 때, 황금비율을 직접 반영하여 사진 작품을 제작하고, 공익광고 스토리보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공간의 비례 원리에 관심을 쏟았다. 그러나 그 탐구가 감상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분명했다. 수학 시간에 배운 기하학적 개념을 시각 공간 설계의 언어로 전환하는 과정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름다운 감상이 아니라, 왜 그 비례가 인간에게 안정감을 주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 학생의 활동 핵심은 현상에 대한 물리적 질문이다.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널 때, 어느 학생은 그냥 지나치는데 타코마 대교 붕괴 연상을 본 뒤 '왜 다리가 저렇게 흔들리다 무너졌을까?'를 묻는 학생은 다르다. 그 질문이 공명 현상 고유진동수로, 구조 설계의 안전 기준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1학년 학생으로서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가져야 할 출발점이다.

[에듀플러스][박건영의 셀프 입시]⑥건축학으로 가는 생기부

3. 2단계(2학년): 뼈대를 강하게, 수학과 물리학이라는 단단한 척추

2학년의 핵심은 수학을 피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모든 공학처럼 건축도 수학 없이 성립하지 않는다. 구조물의 안전을 계산하는 것도, 친환경 에너지 효율을 설계하는 것도, 유체 역학적으로 바람 하중을 분석하는 것도 모두 수학의 언어다.

서울대 건축학과에 합격한 학생에게서 이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BIM(빌딩 정보 모델링)과 CAD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수학적 구조 분석의 연장선에서 탐구한 흔적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아가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한옥 지붕과 킴벨 미술관에 어떻게 쓰였는지 분석한 탐구, 이차함수가 금문교 케이블 설계에 적용된 원리를 수식으로 직접 검증한 보고서, 심화 수학과 물리학을 결합하여 보(Beam)에 하중을 가했을 때의 처짐 곡선을 이계도함수로 유도한 '처짐 방정식' 도출까지 흘러갔다. 거창한 실험이 아니어도 된다. 수업 시간에 배운 개념을 교과서 밖 건축물에 직접 적용해 보는 시도, 그 시도가 2학년 시기에 생기부에 남았으면 한다.

4. 3단계(3학년): 미래의 결정, 형용사적 정체성을 쌓다

3학년은 비상의 단계다. 그러나 비상한다고 해서 더 여려운 탐구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탐구의 방향과 성격이 조금 더 발전해야 한다. 교과 지식의 소화에서 현장의 문제 제안으로 나아가 봤다면, 이제는 개인의 호기심에서 사회적 관심으로 확장해서 나는 이제 어떤 건축가가 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정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친환경 건축을 하겠다 혹은 유니버살 디자인을 좋아한다, 건축과 AI를 융합하고 싶다는 등 이런 것에서 출발한 학생들의 마지막 학년의 모습은 모두 나는 어떤 건축가가 될 것인가 라는 정체성이 명확해진다. 다시 말해, 자신의 미래 자아에 대한 형용사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명사형 희망(“건축가가 되고 싶습니다”)이 아닌, 형용사형 정체성(“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공간 복지를 설계하는 건축가”)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심화탐구와 논문탐색이 생기부를 풍성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예컨대 'AI의 설계보다 창의적이고 윤리적 설계 능력을 갖춘 건축가가 되겠다.'에서 출발한 학생일수록 깊이도 탐색도 유의미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모두 물어야 한다. 나는 '어떤 건축가가 될 것인가'라는 정체성의 선언을.

5. 견고한 건축의 생기부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건축학과 합격생의 생기부는 이런 문장들로 채워졌다.

“공학적 원리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구조 중심형 건축공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단순한 공간 디자인을 넘어 건축물의 뼈대가 되는 물리적·수학적 원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학생임. 미적분을 활용해 구조물의 하중과 처짐을 계산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제로에너지 건축 기술을 탐구하여 공학적 문제 해결 능력을 탁월하게 증명함.“

“공간 중심 가치를 실현하는 따뜻한 건축 설계자”가 되겠습니다.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적 감수성과 구조의 안전을 타협하지 않는 공학적 냉철함을 겸비함. 언제나 사람을 향하는 따뜻한 시선으로 유니버설 디자인을 고민하는 미래 지향적 건축학도임.“

이 생기부의 문장들이 공허한 희망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할까? '어제 건넌 다리는 왜 흔들렸는가? 학교 복도 창문은 왜 저 방향으로 나 있는가? 동네 경사로는 왜 저 각도인가.' 이 질문들을 교과서의 언어로 정리해 가는 순간, 생기부는 바뀐다. 그리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수렴된다. “나는 어떤 건축가가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학생만이 흔들리지 않는 생기부를 완성한다.

*필자 주: 이번 칼럼은 '서울대 건축학과, 경희대 건축학과, 연세대 건축공학과'에 합격한 학생과 생기부의 도움을 받아서 작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