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상도는 높이고 전력 소모는 거의 없는 새로운 디스플레이 기술이 나왔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이 색을 유지할 때 전력을 거의 쓰지 않으면서, 픽셀 하나가 스스로 색을 바꿔 다양한 색을 표현하는 '모노픽셀(monopixel)' 구조를 구현해, 배터리 부담 없이 더 선명한 AR·VR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KAIST는 전기및전자공학부 송영민 교수 연구팀이 광주과학기술원(GIST) 정현호 교수팀과 함께, 전기 변색 소재를 활용해 '재구성가능한 저전력 반사형 모노픽셀(reconfigurable Gires-Tournois resonator, 이하 r-GT)'을 개발했다고 29일 밝혔습니다.
요즘 디스플레이 기술은 더 선명한 화면을 구현하기 위해 픽셀 크기를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픽셀이 작아질수록 전력 소모가 커지고, 빛이 줄어드는 문제가 생깁니다. 특히 AR·VR 기기처럼 눈 가까이에서 보는 디스플레이는 아주 작은 픽셀과 낮은 전력을 동시에 만족해야 하기 때문에 구현이 어려운 기술로 꼽힙니다.
연구팀이 개발한 r-GT 픽셀은 전기를 가하면 색이 바뀌고, 한 번 바뀐 색은 전기를 끄고도 일정 시간 유지됩니다. 즉, 색을 바꿀 때만 전력을 사용하고, 유지할 때는 거의 전력이 필요 없는 구조입니다.

이 기술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전기를 가하면 성질이 변하는 전도성 고분자 '폴리아닐린(polyaniline, PANI)'입니다. 이 물질은 1볼트(V) 이하의 낮은 전압에서도 반응하며, 빛의 성질인 굴절률이 변하면서 색이 달라집니다. 굴절률은 빛이 물질을 통과할 때 얼마나 꺾이는지를 나타내는 값으로, 이 값이 변하면 색도 함께 변합니다.
여기에 빛을 여러 번 반사시켜 특정 색을 더 강하게 만드는 '공진 구조(resonator)'를 결합했습니다. 이 구조는 작은 변화도 크게 증폭해, 적은 전력으로도 선명한 색 표현이 가능하도록 합니다.
그 결과, 초저전력(90 μW cm⁻²)으로도 220° 이상의 넓은 색상 변화를 구현했습니다. 1cm² 기준 약 0.00009W 수준의 매우 적은 전력만으로도 색상환(360°) 중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범위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 다른 핵심은 '모노픽셀(monopixel)' 구조입니다. 기존 디스플레이는 하나의 픽셀을 빨강(R)·초록(G)·파랑(B)으로 나눠 색을 만들지만, 모노픽셀은 픽셀 하나 전체가 스스로 색을 바꾸며 다양한 색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이 구조는 픽셀을 나누지 않기 때문에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픽셀을 구현할 수 있어 해상도가 높아지고, 빛 손실도 줄어 더 선명한 화면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PANI는 전압을 제거한 뒤에도 색 상태를 일정 시간 유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덕분에 색을 바꿀 때만 전력을 사용하고, 색을 유지할 때는 거의 전력이 필요 없는 '메모리-인-픽셀(memory-in-pixel)' 디스플레이 구현 가능성도 확인됐습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통해 색을 넓은 범위(220.6°)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확인했으며, 픽셀 크기도 1.5마이크로미터(μm) 수준까지 줄일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최대 약 16,900 PPI에 달하는 것으로, 사람의 눈으로는 픽셀을 구분하기 어려운 초고해상도 수준입니다.
아울러 단일 픽셀 구조만으로도 표준 색 영역(sRGB)의 약 절반 수준(48.1%)의 색을 표현할 수 있었으며, 재료 조합을 다양화할 경우 약 70% 수준(69.9%)까지 확장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실제로 5×5 모노픽셀 배열을 제작해 성능을 검증했습니다. 이때 색을 바꾸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매우 작은 수준(2.31 mJ)으로, 일반 LED 대비 최대 5.8배 이상 적은 전력으로도 색을 구현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더불어 이 구조는 외부 빛을 반사해 화면을 표현하는 반사형 디스플레이로, 주변 조명이 강할수록 오히려 더 잘 보이는 장점도 확인됐습니다.
이번 연구는 전기화학 소재와 광 공진 구조를 결합해 초저전력으로 풀컬러 구현이 가능함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향후 AR·VR용 초고해상도 근접형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웨어러블 기기, 야외 정보 표시 장치, 전자종이 등 에너지 효율이 중요한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색을 유지하는 동안 전력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어, 지속 가능하고 에너지 효율적인 디스플레이 기술로 발전할 가능성도 제시했습니다.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정효은 석사박사통합과정 학생이 공동 제1저자, 송영민 교수가 교신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광학 분야의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인 '라이트: 사이언스 앤 애플리케이션스(Light: Science & Applications, IF 23.4)'에 2월 28일 자 온라인판에 게재됐습니다.
최성훈 기자 csh87@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