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대대적인 약가 인하를 결정한 배경은 한국의 높은 약제비 부담 구조가 주 요인이었다. 국내 의료비에서 약제비 비중은 20.5%로 영국(11.8%), 덴마크(6.2%), 프랑스(13.1%) 등 주요 선진국보다 약 1.5배~2배까지 높다.
제네릭 의약품 가격 수준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한국의 제네릭 약가는 오리지널 대비 53.5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5%를 크게 웃돈다.
한국은 최초 등재 시 약가를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하지만 이후 가격 변동이 거의 없는 구조다. 반면 해외 주요국은 시장 경쟁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지속 하락한다. 이 차이로 인해 특허 만료 이후 제네릭이 대거 출시되는 시점에는 한국의 제네릭 가격이 오히려 해외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한국은 의약품 지출 증가 속도도 빠르다. 2023년 기준 한국의 경상의료비 연평균 증가율은 10년간 7.8%로 OECD 평균(5.2%)보다 높다. 1인당 의약품 지출액 역시 구매력 평가지수 기준 969달러로 OECD 평균(658달러) 대비 47.3% 많다. 미국(1713달러) 독일(1158달러) 스위스(1061달러)에 이어 상위권이다.
나영균 배재대 교수는 “한국의 1인당 약제비는 GDP 수준이 비슷한 영국(521달러), 호주(590달러)보다도 높다”며 “단순 소득 수준 차이가 아닌 약가 구조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특허가 만료돼도 제네릭 간 가격 경쟁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로 '동일성분 동일가격' 제도를 핵심 원인으로 꼽는다. 제네릭이 오리지널의 53.55%로 일괄 책정되면서 제품 간 가격 경쟁이 사실상 차단된 구조라는 것이다.
그 결과 동일 성분 의약품이 다수 등재돼도 가격이 아니라 영업비용 중심으로 경쟁하고, 특허 만료 이후에도 약가가 충분히 떨어지지 않는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지속적으로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에 따라 글로벌 주요 국가들은 약가 인하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기반으로 약가 협상 제도를 도입하고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의 리베이트 관행을 규제하는 등 강도 높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혜국(MFN) 약가 기준을 적용하는 방안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2028년부터는 PBM의 리베이트 수취를 제한하고 그 이익을 소비자와 정부에 환원하도록 하는 규정을 시행할 예정이다. 의약품 표시가격의 최대 70%에 달하는 리베이트 구조가 약가 상승 핵심 요인으로 본 것이다.
일본은 공적보험 청구가격을 단일하게 설정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유사하지만 실거래가 조사를 반영해 정기적으로 약가를 조정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약가 인하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 독일은 신약 출시 초기에는 자유로운 가격 설정을 허용하되 6개월 내 임상적 추가 효과를 평가해 다시 협상하는 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기존 치료 대비 효용성을 중심으로 가격을 재조정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고령화로 의약품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기존 제도를 유지할 경우 재정 부담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고 봤다.
나영균 교수는 “단순 가격 인하를 넘어 제네릭 가격 구조와 경쟁 메커니즘을 재설계하는 중장기 약가 정책 로드맵이 필요하다”며 “성분명 처방 의무화, 참조가격제 도입, 제네릭 경쟁입찰제 등의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